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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K-POP 가사 못 알아들어요”이명박 | 2018.03.05 | N0.163
“나도 K-POP 가사 못 알아들어요”

한편 프랑스에서 박병선 박사를 만나기 하루 전인 2011년 5월 13일,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내게 명예문화예술학 박사학위를 수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몇 번을 고사했지만, 외규장각 반환에 큰 역할을 한 파리7대학 총장의 부탁을 끝내 거절할 수 없었다.

학위 수락 연설을 하는데 많은 한국어 과목 수강생들이 참석했다. 놀라운 것은 내가 하는 말에 학생들이 동시에 웃고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학생들은 한국어에 능숙했다. 연설이 끝난 후 대학 측에서 마련한 리셉션에서 한 여대생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대통령님, 제가 한국어과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편에 속합니다. 한국어 대화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실력인데, 도대체 K-POP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그 여학생에게 이야기했다. “걱정 말아요. 한국 대통령인 나도 K-POP 가사를 못 알아들으니까.” 그러자 그 여학생은 ‘정말이냐?’며 재차 확인 후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내 임기 중 한류는 크게 꽃을 피웠다. 그로 인해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관광산업은 물론이고 우리 상품의 수출에도 큰 기여를 했다.

나는 한류 열풍을 일으킨 문화예술인들의 노고를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한류가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011년 5월 프랑스 공식 방문을 앞두고 파리에서의 K-POP 공연을 검토해보라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시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불던 한류 열풍을 세계무대로 확산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파리 공연에 대한 연예기획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타진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가 대사관과 파리문화원을 통해 준비를 돕고, 실패를 해도 손해가 나지 않게 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한 연예기획사가 참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럽 각지에서 한류팬이 몰려들어 공연은 성공리에 끝났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미 유럽에서도 한류 열풍이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파리 공연을 통해 우리 K-POP이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과거에는 문화예술인들이 경제계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지만, 이제는 경제가 문화의 덕을 보는 시대가 왔습니다.” 2012년 1월 신년음악회에서 문화예술인들에게 한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켜나간다면 선진 한국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37. 과학강국을 위한 새로운 도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

앞서 이야기했지만 2006년 10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1년 남짓 앞두고 나는 유럽 3개국 탐방에 나섰다. 선진국의 운하와 과학기술단지를 둘러보고 정책공약에 반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0월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초과학연구소로는 세계 최대라고 하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입자가속기를 시찰했다.

CERN은 1954년 설립 이후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세계 최첨단 물리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하 100미터 아래에 직경 8킬로미터, 둘레 24킬로미터의 도넛모양의 입자가속기를 보면서 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모델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발상으로 신산업을 일으켜 주도국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여기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 같은 불안감은 같은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처인 다름슈타트에 위치한 국립중이온연구소(GSI)를 방문하면서 더욱 커졌다. 늦은 밤에 도착했음에도 연구소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GSI는 1969년 설립됐는데, 당시 독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수준이었다. GDP 1만 달러 시절에 독일은 이미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에 중점을 둔 것이다. 유럽 연구소의 공통점은 중장년층연구원보다 젊은 연구원들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저력이 오늘의 유럽 선진국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11월 일본의 과학도시 쯔쿠바도 방문했다. 일본은 1971년에 벌써 고에너지 가속기연구소인 KEK를 설립하여 고에너지 양성자 가속기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선진국 학자들이 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을 찾아올 정도로 발전된 시설이었다. 그러한 기초과학의 힘이 일본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게 됐다.

앞서 서울시장 시절이었던 2006년 4월, ‘은하도시포럼’을 이끌던 민동필 서울대 교수로부터 ‘은하수 프로젝트’라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 철학과 감성을 나누는 새로운 도시를 구상한 내용이었다.

나는 이 꿈같은 프로젝트에 사업성이 엮여진다면 그 성과를 국민이 함께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비벨트의 밑그림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민 교수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됐고 유럽과 일본 방문을 통해 그 모습과 실천방안은 구체화됐다. 결국 2007년 11월, 과비벨트 조성을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표 공약의 하나로 발표했다.

9장에서 언급했지만, 과비벨트 입지 선정 과정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과비벨트는 대덕 연구단지 주위를 거점으로 하되, 연구개발 특구로 지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분산 추진하기로 했다.

2011년 5월 16일, 충청권을 비롯해 대구, 광주, 포항 등 타 지방을 포함한 과비벨트 입지 선정 결과가 발표됐다. 나는 과비벨트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역량 강화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함께 모여, 한국은 물론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열정과 창의의 마당이 되길 바란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국가 백년대계에 속한다. 따라서 국가의 기초과학 진흥정책은 일관성 있게 꾸준히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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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8-03-05 01: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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