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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사면의 승부수이명박 | 2018.02.22 | N0.158
이건희 사면의 승부수

2009년 6월 22일, 국제행사심사위원회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승인했다. 같은 해 9월 14일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장은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공동으로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출중한 능력과 열정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당시 평창 유치를 앞두고 김운용 IOC 부위원장과 박용성 IOC 위원이 물러난 상황이었다. IOC 위원으로 활동하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자격이 정지된 상황이었다.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며 본인이 요청한 결과였다. 문대성 IOC 선수위원이 있었지만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IOC 위원들을 설득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IOC 위원 자격으로 IOC 위원들을 설득할 사람이 필요했다. 김진선 위원장과 조양호 위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건희 회장의 사면·복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각각 정부에 제출했다. 두 사람 이외에도 체육계와 강원도 등 각계에서 이 회장의 사면·복권을 요구하는 수십 건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IOC의 강력한 스폰서인 삼성을 배경으로 한 이건희 회장의 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평창 유치를 위해 이 회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은 야권의 대대적인 정치 공세를 불러올 가능성이 컸다. 우리 정부에 ‘부자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비난하던 야권이 이 회장 사면을 그대로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국익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갈림길에 섰다. 관계부처에 해당 사항을 점검해보도록 지시했다.

“노무현 정부도 2007년 2월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박용성 IOC 위원을 사면한 전례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기 드뤼(Guy Drut) IOC 위원이 사면을 받아 프랑스 올림픽 유치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그간 있었던 유사 사면 사례와 해외 사례들을 보고했다. 또한 내부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5퍼센트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이건희 회장 사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하는 35퍼센트의 국민들도 절반 이상이 이 회장이 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과거 정부와 외국의 전례도 있고 국민의 지지도 있다면 정면 돌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야권의 공세로 인한 정치적 타격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전경련에서도 이건희 회장과 함께 78명의 경제인에 대한 특별사면을 정부에 요청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면·복권은 이 회장한 사람으로 하고 전경련 등이 요구한 다른 경제인 사면·복권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원포인트 사면’이었다.

그동안 ‘경제 살리기’란 명목으로 시행된 경제인에 대한 잦은 특별사면은 ‘유전무죄’라는 국민적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 회장 한 사람만을 단독으로 사면·복권한다면 그 목적도 명확하고 본인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더욱 열심히 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009년 12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자 예상한 대로 야권은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성명을 통해 ‘재벌 특혜’라고 비난했다. 진보 언론들도 ‘법치주의를 무너뜨린 사면’이라며 일제히 비난에 나섰다.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들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면을 비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해당 기사에서 한국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소개하며 “삼성이 올림픽의 주요 스폰서이긴 하지만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IOC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명목으로 사면된 이건희 전 회장의 IOC 위원직을 회복시킬지는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다행히 이 회장은 IOC 위원직에 복귀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참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행보에 나섰다. 이 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년 반 동안 열한 차례 해외 출장을 강행하며 평창 유치에 힘을 보탰다. 110명의 IOC 위원을 거의 다 만났고, 반대 성향을 보인 IOC 위원을 다섯 번이나 만나 설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 제일모직 사장을 맡고 있던 김재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 이 회장을 보좌해서 올림픽 유치에 크게 기여했다.

이 회장의 합류로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KOC) 회장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진용이 완성됐다. 평창의 세 번째 도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대통령부터 김연아까지 총력전

2011년 7월 2일,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탑승했다. 공군 1호기의 출입문 안쪽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엠블렘이 부착되어 있었다. 원래는 대통령 휘장이 붙어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날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담고자 엠블렘을 부착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7월 6일 IOC 총회가 개최될 때까지 닷새를 한 도시에 머무는 일정이었다. 한 달 전 더반 방문 계획을 짤 때 내가 5박의 일정을 제시하자 참모들은 “2~3일 정도만 머물자”며 반대했다. 5박 일정으로 ‘올인’했는데 유치에 실패하면 모든 책임이 내게 돌아온다는 이유였다.

유치에 실패할 경우 정치적 타격을 염려하는 참모들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 후회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5박 일정을 잡고 IOC 위원들이 도착하는 3일보다 하루 앞당긴 2일 더반에 도착을 한 것이다.

더반에 도착하기 6개월 전인 2011년 초부터 나는 유치위원회 관계자들과 전략회의를 가졌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내게 편지를 써 몇 가지를 건의했다.

먼저 유치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단합이라는 점과 개최지가 결정되는 더반 IOC 총회에 대통령이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연설이 영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이었다. 당시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 이건희 IOC 위원 세 사람이 유치를 주도하고 있었다. 워낙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일부 의견차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이 조율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다.

다행히 세 사람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전략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발휘했다.

나는 맞춤형 전략도 중시했다.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IOC 위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동계올림픽 유치 작업은 IOC 위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IOC 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성향과 관심사를 철저히 파악해 각각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짜도록 당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도 IOC 위원들 모두에게 친서를 보내면서 각자의 개인적인 인연과 관심사를 내용에 담았다. 친서도 우편으로 보내지 않고 각국주재 우리 대사관에서 직접 인편으로 전달하도록 했다. 또한 통화를 할 때도 시차를 고려해 그들의 일정에 불편을 주지 않도록 했다. 우리의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소통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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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8-02-23 02:03:10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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