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이야기
HOME > 짧고도 긴 역사 > 회고록 이야기
은행의 도덕적 해이이명박 | 2018.01.17 | N0.155

은행의 도덕적 해이

 

당시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를 풀라는 거센 압박을 받고 있었다. 우리 은행들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외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의 빗장을 열어 시중은행에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부정적 입장이었다. 은행들이 스스로 외환 확보에 나설 생각은 않고 한국은행에 손 벌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당시 우리 은행과 금융회사들은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도 일종의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다. 당장 외환유동성 확보가 시급한데도 은행들은 달러 조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환을 풀면 손쉽게 위기를 넘어가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각국 정상들은 자국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불만이 많았다. 특히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강경했다. 20099,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사르코지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프랑스 경제위기설이 나돌자 엘리제궁에 프랑스의 6대 은행장들을 불러놓고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은행장들은 걱정할 것 없다. 안심하라고 답변했는데, 바로 다음 날 위기가 터졌다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은행장들은 전부 사기꾼이며, 그들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비판했다.

 

G20 정상회의에서 은행에 문제가 생기면 은행장이 퇴임 후에도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사실 이런 문제는 정상들이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 국장급 회의에서 논의할 일이다.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맞아 각국 정상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문제까지 논의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르코지는 금융업자들의 과욕이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은행과 투자회사들이 만든 파생상품이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는 금융회사의 역할을 본연의 산업 지원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르코지는 미국이 금융위기의 진원지이므로 미국이 위기 극복 후 새로운 경제 질서를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어쨌든 이 같은 사르코지의 주장은 각국 정상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처음에는 사르코지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만났을 때 더 이상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취임 초에는 파산 위기 속에서도 막대한 스톡옵션과 연봉을 챙기는 금융회사 CEO들의 부도덕성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표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난 강도가 점차 약해졌다. 미국 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식한 듯했다.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며 보유 외환을 푸는 데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시중은행은 물론이고 언론과 국회까지 나서서 한국은행을 압박했다. 결국 1021일 한국은행은 외화차입을 3년간 지급 보증하고, 300억 달러의 외화유동성을 추가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어 1026일에는 회사채와 주택저당채권까지 인수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의 양보로 시중은행들은 자금난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양보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한은법 개정에서 금융안정의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는 명분으로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권과 감독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고졸 출신이 대우 받는 사회

 

17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071017, 나는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한국조리과학고를 방문했다. 한국조리과학고는 매우 모범적인 전문계 고등학교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 나는 조리복을 착용하고 학생들과 함께 조리실습을 했다.

 

조리실습 견학을 마치고 학생들과 대화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따로 떨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 건물은 뭐하는 곳이냐?”고 묻자 학교 관계자는 진학반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알아보았더니 이 학교에서 취업을 하는 학생은 30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70퍼센트는 대학에 진학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실망했다. 한국조리과학고 같은 모범적인 전문계 고등학교에서조차 진학 열풍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조리과학고 방문은 한국의 청년 실업 문제를 재고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 청년층 인구는 1991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19911,212만 명이던 청년층 인구는 2007986만 명까지 줄었다. 그런데 청년층 취업자 수는 이보다 훨씬 빠르게 감소했다. 199145.3퍼센트에 달하던 청년층 고용률은 200742.6퍼센트에 머물고 있었다.

 

그 결과 청년 실업은 어느새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8퍼센트 대를 넘기는 해가 많았다. 2007년 들어 7퍼센트대로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청년 실업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대학 진학률의 상승이다. 199133.2퍼센트였던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2007년에는 82.8퍼센트까지 상승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당시 대학 설립 요건 완화정책으로 신규 대학이 늘어난 것도 주요한 이유였다.

 

특히 실업계 고등학교의 경우 1991년 대학 진학률은 8.3퍼센트, 취업률은 76.6퍼센트에 달했지만, 2007년에는 진학률 71.5퍼센트, 취업률 20.2퍼센트로 역전 현상을 보였다. 시흥의 한국조리과학고에서 본 것은 그러한 현상의 결과였다.

 

대졸 인력을 흡수할 노동시장이 대폭적으로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아지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자의 태반은 직장을 얻지 못했고, 고졸 인력이 필요한 중소기업 직종은 인력난을 겪어야 했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취업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비용도 증가했다. 부모들은 입시 사교육비에 이어, 대학생 자녀의 취업 준비를 위한 스펙 쌓기에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들에게 무작정 눈높이를 낮추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고졸 출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고졸과 대졸의 임금 격차가 큰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고용이 축소되면서 2009년 들어 청년실업률은 다시 8퍼센트 대에 진입했다. 우리 정부는 청년 실업 문제에 관한 단기적인 처방으로 청년 인턴제, 공공기관 신규 채용 확대, 청년 창업 지원 예산 확대, 청년 고용 기업의 세제 혜택 등 청년 실업 완화를 위한 정책을 폈다.

 

이와 함께 장기적인 처방의 일환으로 먼저 대학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취임 후 나는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대학 퇴출 및 통폐합 지속 유도를 선정했다. 이어 20093월에는 사립대를 중심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여 경쟁력 없는 대학 퇴출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청년 실업 문제를 파고들어가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고졸 출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었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청년 실업이 완화됨은 물론 입시를 위한 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경감될 수 있었다. 또한 우수한 고졸 인력 채용으로 제조업 경쟁력도 더 높아질 수 있었다.

 

내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마이스터고 육성 등 신고졸시대를 천명한 것은 그 같은 일환이었다.

  • facebook
  • twitter
댓글 리스트
  • 이충웅 2018-01-17 14:08:17
  • 이충웅 2018-01-18 12:34:46 국민이 바보가 아닙니다 이현령비현령 법 해석하고 내로남불로 현옥시킵니다 불과 몇 %가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물론 보수도 반성해야 합니다 힘내십시요~!!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