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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구간 감세는 나도 반대이명박 | 2018.01.15 | N0.154

최고 구간 감세는 나도 반대

 

20089,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감세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감세법안은 여야 간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200812월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최종 법안의 내용은 법인세는 3퍼센트포인트, 소득세는 2퍼센트 포인트 인하하되, 서민과 중소기업에 우선 감세 혜택을 주도록 구간별 인하시기를 달리 적용하는 방안이었다. 서민과 중소기업은 2008년부터,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해당되는 최고 구간은 2010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감세에 대한 야권의 공세가 지속되면서 2009년 국회에선 최고 구간의 감세 적용을 2012년으로 늦추기로 했다.

 

최고 구간 감세 적용을 앞두고 2011년 야당은 또다시 부자 감세를 거론하며 최고 구간 감세 철회를 주장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까지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당시는 두 차례의 세계 금융위기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을 통한 양극화 해소에 중점을 두던 시기였다. 당초 감세안이 통과된 2008년과 비교해 2011년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고 세율을 인하하는 것은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백용호 정책실장을 불렀다. 백 실장은 나와 함께 오랫동안 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한 만큼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게 국세청장과 공정거래위원장직을 맡긴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였다.

 

과거 국세청장들은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내 임기 중 국세청장을 맡은 백 실장과 이현동 청장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백 실장에게 감세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나는 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최고 구간까지 세율을 내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국민과 국회가 동의하겠어요? 여당과 협의해 적절한 대안을 찾아보세요.”

 

백 실장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해 절충안을 마련했다. 다음 날 정부는 한나라당과 국회에서 고위당정협의를 열고 절충안을 기준으로 세제 개편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119월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 구간 감세안을 철회했다.

 

다만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위해 과세표준 200억 원 이하인 법인의 세율은 당초 계획대로 20퍼센트로 내렸다. 그 결과 전체 기업의 99퍼센트 이상은 감세 대상이 됐고, 소수의 대기업만 22퍼센트 세율에 묶이게 됐다. 소득세 최고 세율은 낮추지 않기로 했는데,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안이 나와 과세지표 3억 원 이상인 개인의 세율은 오히려 38퍼센트로 높이게 됐다.

 

소득세, 법인세 인하와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정이었다. 종부세는 전임 정부가 만든 것으로, 일정금액 이상의 부동산에 대해 중과세를 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종부세는 이중과세, 징벌적 과세 등의 비판이 거셌다. 재산세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보유에 대해 추가로 세금을 내는 것은 이중과세이며, 같은 금액의 다른 자산에 대해서는 과세를 하지 않으면서 부동산에 대해서만 이중과세를 하는 것은 조세 형평에 어긋난 징벌적 과세라는 비판이었다.

 

강남을 비롯한 고소득층 거주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민의 반감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100년이 지나도 뜯어 고칠 수 없는 법을 만들겠다며 종부세를 신설했다.

 

취임 후 종부세법을 바꾸려 했으나 야당은 역시 부자 감세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심지어 여당 내에서도 일부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20081113일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과세를 위헌으로, 주거 목적의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부과를 헌법 불합치로 각각 결정하면서 종부세법 개정은 탄력을 받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종부세법은 과세대상을 공시지가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높이고 세율을 낮추며 세대별 합산 대신 인별 합산을 적용하는 선에서 개정됐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200942, 영국 런던에서는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200811월 워싱턴 회의에서 합의된 원칙의 실행 방안으로 글로벌 경제회복과 고용 창출을 위한 범세계적 공조 방안을 합의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각국 재무장관들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및 통화정책에 합의하는 모습이었다.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각국 재무장관들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상호 견제보다는 협력을 선택한 것이다. 10여 년 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를 생각하면 감회가 새로웠다.

 

200887, 한국은행은 5퍼센트였던 기준 금리를 0.25퍼센트 인상했다. 당시는 유가가 배럴당 147달러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또한 수입 물가가 뛰면서 7월 소비자 물가는 5.7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아직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하지는 않았지만, 9월 위기설 등으로 우리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9월 위기설은 경제문제를 넘어 정치 이슈로 부각되면서 2007년 발생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와 함께 우리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경색시키고 있었다.

 

금리 역시 환율과 마찬가지로 양날의 칼이다. 금리를 인상할 경우 통화량이 줄어들어 물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한편으로 금리인상은 경기를 침체시켜 기업과 자영업자의 매출을 줄이고 실업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는다.

 

당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위기보다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선택을 한 셈이다. 그 일로 인해 기획재정부에서는 이 총재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됐다. 위기 극복에 비중을 둔 기획재정부로서는 이 총재가 정부 방침에 협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총재는 전임 정부 때 임명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취임 초부터 한국은행 총재를 교체해야 한다는 건의가 잦았다. 그러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반대했다. 나 역시 이 총재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그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 장관과 이 총재는 거시정책에 대한 의견이 꽤 차이가 있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같은 의견차를 두고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의 갈등이라 보도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갈등으로 보지 않았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창의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올바른 해법을 끌어낼 수 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지혜를 모아야 극복이 가능하다. 서로 자기주장만 고수한다면 제3의 대안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이는 내가 오랜 기업 활동에서 얻은 교훈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대립하며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기 위해 나는 이 총재를 정부의 경제 관련 회의에 참석하도록 해 토론할 기회를 자주 가졌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지 한 달여 만인 2008915,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한국은행에는 한 달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기준금리를 인상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109, 미국과 EU 등 전 세계 중앙은행이 동시다발적으로 1퍼센트포인트 이상의 금리 인하를 발표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국제공조로 극복해나가자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에 우리도 미국이나 EU처럼 1퍼센트포인트 이상의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0.25퍼센트포인트만 인하했다.

 

당시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물가의 최후 보루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였다. 위기 극복을 위해 과감한 환율 및 재정정책이 병행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마저 금리를 대규모로 인하한다면 물가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한국은행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불만이 다시 고조됐다.

 

심지어 이 총재에 대해 전임 정부 사람이라 금융위기 극복에 비협조적인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 총재에 대한 경질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박병원 경제수석이 반대하고 나섰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경질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박 수석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109일 이후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 경색은 더욱 가속화됐다. 미국과 EU 등 선진국들은 제로 금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으로 금리인하에 나섰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역시 2주 만인 1027일 기준금리를 0.75퍼센트포인트 추가 인하했다. 이후 한국은행은 2009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2퍼센트까지 인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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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8-01-15 11: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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