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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와의 전쟁이명박 | 2018.01.12 | N0.153

물가와의 전쟁

 

국민의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 환율 개입을 자제했지만 그렇다고 물가상승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환율정책으로 물가관리가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서민경제를 안정시켜야 했다.

 

서민경제 안정화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물가를 관리했다. 정부가 물가를 관리한다고 해서 예전처럼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낮은 가격을 강요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국제가격에 비해 국내가격이 현저하게 높은 품목은 즉각 수입하는 등 수급 조절과 시장 원리에 따라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20083분기 5.5퍼센트까지 치솟았던 물가는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물가상승률이 연간 2.1퍼센트를 기록하여 안정적 추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2010년 하반기부터 국제원자재 가격이 다시 급등하기 시작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통화량을 급격히 늘린 결과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온과 태풍 등 이상기후와 구제역 파동으로 농축산물 가격까지 급등했다. 그로인해 물가상승률은 다시 3퍼센트대로 높아졌다.

 

201114, 국무회의에서 나는 참석자들에게 물가안정에 주력할 것을 당부했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서민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물론 물가상승이 불가피한 부분도 있지만, 나는 정부가 노력하면 상당 부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민을 위해 물가안정에 적극 노력하세요.”

 

113,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물가불안에 강력 대응하기 위해 서민물가 안정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환율과 금리 조정을 통한 물가정책은 경기 침체와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었다. 따라서 이날 대책은 거시적인 접근보다는 품목별 관리에 초점을 둔 방안이었다.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물가상승은 계속됐다. 20113분기 물가상승률은 4.3퍼센트까지 치솟았다. 7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나는 김대기 경제수석에게 지시했다. “지금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기 어렵습니다. 물가와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경제장관들은 매주 물가대책회의를 상례화하고, 수석비서관회의도 물가 점검부터 하고 결과를 보고하세요.”

 

이후 각 부처는 서민생활과 밀접한 소관 품목에 대해 매일 가격과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공공요금 인상도 보류하는 등 물가안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2012년부터 물가는 점차 안정세를 회복하여 2퍼센트 초반대 상승률 기조를 다음 정부에 넘겨줄 수 있었다. 임기 5년간 물가는 연평균 3.3퍼센트 상승했다. 2008년 선정했던 52개 생필품 가격은 그보다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와 두 차례 세계경제위기 그리고 자연재해와 구제역 등으로 인한 물가상승을 정부의 노력만으로 안정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임기 중 내가 가장 안타깝게 여겼던 문제 중의 하나였다.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로 감세정책을 펼치다

 

1980년대 초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수상은 감세정책을 추진하여 불황에 빠진 경제를 살려냈다. 일반적으로 감세는 직접적 대상인 기업과 개인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감세는 기업의 투자와 생산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계 소득과 소비를 진작해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이처럼 감세정책은 투자를 유발하고 근로의욕과 저축동기를 고취해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순기능을 지닌다.

 

감세정책이 조세 수입을 줄여 재정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감세로 경제가 활기를 띠면 궁극적으로 세수가 늘어나 세율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이후부터 내 임기 말까지 총 여섯 차례의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정부의 총 세수는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과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단 두 차례 감소했을 뿐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감세정책이 조세수입을 감소시켜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반증한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국세 세수는 연평균 9.2퍼센트 증가한 반면 소득세 세수는 연평균 15.2퍼센트 증가했다. 누진적 세율구조를 갖는 소득세의 특성 때문에 물가와 임금의 상승 폭보다 소득세 증가 폭이 더 커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는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 결과 국민의 실소득이 줄어 소비 여력을 옥죄고 있었다. 또한 2007년까지 OECD 평균보다 낮았던 한국의 법인세율은 세계 여러 나라들이 글로벌 자본 유치 등을 위해 앞다투어 법인세를 인하하면서 2008년 들어 OECD 평균보다 높아졌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은 법인세 부담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악화됐다.

 

나는 17대 대선에서 감세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고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을 조세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이는 경제학 교과서의 금과옥조이기도 했다. 선거운동 당시 한나라당 경선 상대였던 박근혜 후보 역시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를 슬로건으로 감세 공약을 내걸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감세를 하면 세수가 줄어 복지 재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감세 공약을 비난했다. 20076, 노 대통령은 원광대 특강에서 감세론과 관련하여 감세론 얘기하는 사람들요, 그러면서 무슨 보육예산 더 주고 또 어디 뭐 하고 무슨 복지 한다고 하는데, 뭐요, 도깨비 방망이로 돈을 만듭니까?”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내 감세론은 68,000억 원의 세수 결손을 가져올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인 20078, 갑자기 입장을 바꿔 2008년부터 35,000억 원 규모의 감세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당시 청와대는 서민과 중산층에 국한한 감세라고 주장했지만 민노당은 부자 감세라며 공격했다.

 

대통령 취임 후 20086, 공약대로 법인세율 3퍼센트, 소득세율 2퍼센트 인하 등을 골자로 한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감세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소득세 인하의 효과는 고소득자에게 더 크게 돌아가며, 법인세 인하의 효과는 대기업에게만 돌아간다는 주장이었다. 2007년 민노당이 전임 정부를 비판했던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가령 일률적으로 2퍼센트를 감세할 경우 최소 구간인 1,200만 원을 버는 사람보다 최고 구간인 8,8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더 많은 금액을 감면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다수 저소득층 근로자들의 근로소득세가 면세되는 우리 실정을 무시한 주장이었다.

 

야권의 이런 주장에는 산술적 함정도 존재했다. 단순 금액 비교가 아니라 감세 비율로 보면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정부 초기의 소득세 감세안을 보면, 1,200만 원 이하 구간은 기존 8퍼센트에서 6퍼센트로 세율이 인하되어 25퍼센트의 세금이 경감된다.

 

반면 8,800만 원 초과 구간은 기존 35퍼센트에서 33퍼센트로 세율이 인하되어 5.7퍼센트의 세금만 경감된다. 결국 저소득층에 해당되는 구간은 세금의 25퍼센트를 깎아주고, 고소득층에 해당되는 구간은 세금의 5.7퍼센트를 줄여주는 셈이다.

 

계층 간 감세 비율 문제를 떠나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촉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세계적인 추세였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로 경기 부양이 시급한 상황에서 G20이 선택한 국제 공조 차원의 대응책이기도 했다. ‘부자 감세라는 왜곡된 단순 논리로 치부될 일이 결코 아니었다.

 

정부는 법인세율 인하의 혜택이 기업뿐만 아니라 주주, 근로자, 협력업체 등 경제주체 전반에 골고루 돌아간다는 점 그리고 기업의 투자심리를 부추겨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을 들어 설득에 나섰다. 소비를 촉진시켜 국민소득을 증대시킨다는 점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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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8-01-12 03: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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