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이야기
HOME > 짧고도 긴 역사 > 회고록 이야기
고유가, 고물가이명박 | 2018.01.10 | N0.152

고유가, 고물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와 더불어 우리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은 물가상승이었다. 대내외적 경제 여건의 악화로 물가상승 압력은 세계 금융위기 이전부터 이미 가중되고 있었다.

 

2007년 배럴당 68달러의 유가가 20087147달러까지 수직 상승했다. 유가 상승으로 국제원부자재 가격도 동반 상승했고, 곡물에서 연료를 얻는 바이오연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제 곡물가격도 급등했다.

 

더욱이 환율도 물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2007년 발생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국제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달러 수요가 늘어난 결과였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물가가 올라 물가상승 압력이 커졌다.

 

취임 초부터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하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상황은 단순치 않았다. 외환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환율이 결정되는 변동환율제하에서 정부가 개입해 환율을 하락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려면 외환보유고를 지속적으로 풀어야했다. 그러나 정부의 외환보유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어 외환보유고가 감소한다. 물가안정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은 이처럼 외환보유고를 이중으로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환율 문제에 대해 고민이 커지는 가운데 2008310, 과천청사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업무 보고가 있었다. “세계경제는 10년 호황을 마감하고 이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상수지와 외채는 위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3년의 추세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 3년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당시 경상수지는 매년 악화되고 있었다. 총외채도 102퍼센트 증가해 2007년 말 3,800억 달러에 달했고, 단기 외채는 140퍼센트 증가해 1,5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외환보유액이 2,600억 달러를 넘어 여유는 있었지만,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되면 상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과도한 규제와 높은 세율로 인해 기업의 투자 활력이 약화되면서 취임 전 10년간 경제성장률도 크게 하락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68퍼센트에 이르던 경제성장률이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에는 4퍼센트 대까지 하락한 상황이었다. 강 장관이 보고를 계속했다.

 

따라서 대외균형을 위한 선제적인 대응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상수지 흑자가 매년 반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환율은 꾸준히 절상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경상수지 동향과 괴리되지 않도록 환율이 유지돼야 합니다.”

 

강 장관은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환율이 적정 수준에서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가가 오르면 국민이 힘들지만, 그렇더라도 경상수지 적자가 커져 외환위기를 맞는 것보다 낫다는 의견이었다.

 

실제로 당시 원화는 지나치게 고평가된 면이 없지 않았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원화는 40.3퍼센트 절상돼 한국의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에 일본의 엔화는 16.7퍼센트 절상돼 매년 1,50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환율이 저절로 오르고 있었다. 환율상승으로 물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까지 가세해 환율을 더 올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정부가 환율을 올리기보다는 오히려 환율이 지나치게 급등해 제동을 걸기 위해 시장에 일시적으로 개입해야 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다만 환율을 낮추기 위해 적극적인 환율 방어정책을 쓰지는 않았다. 경상수지 적자 문제도 있었지만, 환율을 방어한다고 외환보유고를 지속적으로 소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환율정책의 위험성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이 가속화됨에 따라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 결과 2008382,000만 달러에 달했던 경상수지 적자폭이 한 달 만인 4월 들어 19,500만 달러로 감소했다. 반면 물가는 20081분기 들어 상승률이 4.5퍼센트에 달하며 고공행진을 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성향의 언론들은 정부가 수출 대기업에만 좋을 뿐, 서민들을 고물가에 시달리게 하는 고환율정책을 쓴다면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요구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외팔이 경제학자를 자주 찾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을 구할 때면 경제학자들은 늘 애매모호한 답변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적용할 수 있냐고 물으면, 경제학자들은 금리를 인상하면 됩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반면에(on the other hand)’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감소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경제정책은 양날의 칼이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정책을 활용할 때는 양면성을 감안한 균형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정치적 공격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환율에 대한 야권의 공격은 그 전형이었다. 환율을 인상하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외환보유고가 줄어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물가 문제라는 한 가지 측면만 놓고 정부를 공격한 것이다.

 

20085, 광우병 사태가 터지고 정부에 대한 비판론이 높아지자 야권의 환율 공세는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이미 환율 문제는 경제문제의 범위를 넘어 정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점차 보수 언론과 여당의원, 고위 공직자들까지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율 개입 등 거시정책을 쓰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결국 단기적이고 개별적인 접근을 통해 물가상승에 대응하기로했다. 급한 대로 서민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에게 유류비 부담 증가분의 일부를 소득세 환급 방식으로 돌려주는 유가환급금제도를 도입했다. 1인당 최대 24만 원까지 지원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현금으로 돈을 지급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유가환급금제도는 유류세 10퍼센트 인하라는 대선 공약을 실천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비판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비판 세력의 요구대로 고환율주의자인 강만수 장관을 해임하고 환율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만일 그때 여론을 수용하여 강 장관을 해임했다면 정치적 비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2008915일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 야권의 요구대로 취임 초부터 물가안정을 위해 저환율정책을 썼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외환보유고는 소진된 상태에서 금융위기를 맞았을 것이니, 우리 국민은 1997년에 이어 또다시 외환위기의 파장으로 고통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 facebook
  • twitter
댓글 리스트
  • 이충웅 2018-01-10 05:35:19

    All For The Love Of A Girl - Johnny Horton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