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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때 가장 힘든 것은 서민이다. 이명박 | 2018.01.03 | N0.149

경제위기 때 가장 힘든 것은 서민이다.

 

흔히 서민 경제를 온돌방의 윗목에 비교한다. 지금처럼 골고루 방을 덥히는 보일러가 없고 단열도 시원치 않아 외풍이 심하던 시절, 아궁이에 가까운 아랫목과 떨어져 있는 윗목의 온도차는 매우 컸다. 날씨가 추워지면 윗목이 가장 먼저 추워지고, 아궁이에 불을 때도 윗목이 가장 늦게 따뜻해졌다.

 

서민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서민들이며, 경기가 되살아날 때도 서민 경제가 가장 늦게 회복된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상황에 처하면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서민 경제가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그동안 서민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나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운영하며 거시정책을 챙기는 한편으로 서민 경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촘촘한 복지, 낮은 물가, 서민금융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생각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일당 노동자 생활을 했다. 당시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일자리였다.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으면 그날은 쉬어야 한다. 당장 내일의 일거리 걱정을 하지 않고 매달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갖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아무리 좋은 복지도 일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이 서민 경제를 위한 국가의 가장 큰 목표였다. 복지와 서민금융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8년 말부터 실업률이 치솟았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악화된 결과였다.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기업에 있을 때 불경기에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경기가 어려울 때 직장을 잃으면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경기가 좋을 때 해야 직장을 잃은 사람도 갈 데가 있다. 기업으로서도 경기가 어려울 때 당장 살아남자고 직원을 해고해버리면, 막상 경기가 회복될 때 숙련된 인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정부가 경영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에게 손실을 감수하며 직원을 해고하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그 고민의 결과 나온 것이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 Job Sharing)’였다.

 

잡셰어링은 경영 상황이 악화된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 근무시간과 임금을 줄여 위기를 견뎌내자는 정책이었다. 기업도 손실을 최소화하고, 직원들도 일터에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정책이었다.

 

 

 

 

외국 정상들도 궁금해한 일자리 나누기

 

그러나 잡셰어링을 실행하는 데는 난관이 있었다. 기업뿐 아니라 노조의 양보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923,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가 발족됐다. 노사가 한걸음씩 양보해 대타협을 이루자는 취지로 한국노총과 경제단체 그리고 정부가 참여했다.

 

수없이 격론을 벌인 끝에 발족 20일 만인 223, ···정 비상대책회의는 대타협을 일구어냈다. 잡셰어링, 노사의 고통 분담과 정부 지원,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등의 내용이었다.

 

노사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인원을 줄이기보다는 경영 여건에 따라 교대제 개편, 근로시간 단축, 임금피크제 도입 확대, 휴직·휴업 등을 통해 고용을 안정시키는 잡셰어링을 실천하기로 했다.

 

이날 노···정 대타협은 노사 양측의 양보와 결단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다. 특히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노고가 컸다. 장 위원장은 이 일로 후일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이후 장 위원장은 대통령 노동특보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계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 노동운동가로서 장 위원장처럼 국가관을 갖고 정도를 걸은 사람은 드물다. 앞으로도 이런 인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약진하기를 바란다.

 

이 같은 헌신을 바탕으로 이룬 노···정 대타협은 이후 우리가 세계 금융위기를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도 잡셰어링에 동참했다. 공무원들은 2년간 임금 동결을 감내했고, 공기업은 초임 삭감과 임금 동결을 받아들였다. 두 차례 경제위기의 여파로 세계 각국이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숫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우리가 인위적인 인력 감축 없이 경제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정의 이 같은 협력을 바탕으로 2009년 들어 일자리 사업을 중심으로 한 예산 조기 집행과 추경의 지원을 통해 희망근로 프로젝트, 청년인턴 등 8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인 2009년 하반기 이후에도 매년 55만 개 수준의 일자리를 국가에서 지원했다.

 

2010년 들어 우리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의 온기가 윗목까지 전달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고용의 회복 속도는 경기의 회복 속도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여 국민의 체감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

 

금년부터는 제가 직접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의 역량을 모아보려 합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몫입니다.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016, 대한상공회의소 신년 인사회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 것을 약속했다. 2010년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를 일자리 창출로 삼고 대통령 주재의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월 1, 1년간 한시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2010121일 제1차 국가고용전략회의가 개최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경제위기로 악화된 고용을 시급하게 회복하기 위한 단기대책으로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고용 창출력을 높여나가기 위한 중장기적구조 개선 대책의 방향도 제시했다.

 

그 결과 2011년 유럽 재정위기라는 또 다른 위기를 겪으면서도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며 재임 5년 동안 12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 수치는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전임 정부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2009년에는 일자리가 72,000개나 감소하는 등 고용의 장기 추세치보다 30만 명 가까이 추락했었지만, 짧은 기간에 바로 정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이는 대량실업과 민생경제 파탄을 경험해야 했던 다른 나라에 비해 대단히 양호한 실적이었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의 경우 세계금융위기 이후 고용률이 급락하고 실업률은 폭등했다. 2012년을 기준으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여전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의 일자리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했다.

 

고용의 질적인 측면도 꾸준히 개선됐다. 임금근로자 중 상용직비율이 200754.0퍼센트에서 201262.7퍼센트로 급증했고, 비정규직 비율은 35.9퍼센트에서 33.3퍼센트로 줄어든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지속적으로 좁혀졌다.

 

외국 정상들은 한국의 견조한 고용 회복세의 비결을 궁금해 했다. 특히 잡셰어링정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제회의 때 여러 정상들이 이에 대해 물어왔다. “기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내보내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잡셰어링에 담긴 철학과 정책방안을 설명하면 그제야 어느 정도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네는 시행하기 쉽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상대적으로는 선방했다고 하지만,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등 질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개선이 미흡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300만 개 일자리 창출에 비해 많이 모자라는 것도 안타깝다. CEO 출신 대통령에게 걸었던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지만, 두 차례 세계경제위기의 파장을 상쇄하기는 힘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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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8-01-03 07: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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