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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금융과 햇살론, 바꿔드림론이명박 | 2017.12.25 | N0.145

미소금융과 햇살론, 바꿔드림론

 

수석회의에서 논의됐던 마이크로크레딧은 미소금융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소금융은 정부가 아닌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자금을 출연해 자신들의 이름과 책임하에 운영하는 시스템이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롯데, 포스코 등 여섯 개 기업과 하나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등 다섯 개 은행이 적극 동참했다. 이들 대기업과 은행들은 10년간 총 2조 원 이상의 재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들을 총괄할 미소금융재단을 설립했다. 초대 이사장은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이 맡았다. 김 회장은 금융계의 산 역사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그의 헌신으로 미소금융은 서민금융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미소금융을 처음 실시할 때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도 나왔다. 그러나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몇십억씩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부도를 낼지 몰라도 200300만 원을 대출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갚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앞서 2009625, 나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했다. 미소금융정책 마련을 위한 현장 시찰의 일환이었다. 상가를 돌아보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경호관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대통령께 감사드릴 게 있어 왔다고 했다.

 

상가를 돌아본 후 식사 겸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 아주머니를 초대했다. 회기동 하나은행 옆에서 20년간 풀빵장사를 하고 있는 분이었다. “돈을 사적으로 빌려 쓴 게 있어서 힘들던 차에 300만 원을 빌려줘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통령이 오신다기에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저는 사채는 써봤지만 이렇게 이자가 싼 나랏돈을 빌린 것은 난생처음입니다. 보답하는 길이 뭔가를 생각했습니다.”

 

서민금융제도를 통해 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돌아갈 때 풀빵을 한두 개씩 사먹는데 그걸 멀리서 쳐다보며 사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 그런 아이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풀빵을 나눠주는 것으로 고마움에 보답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미소금융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도 더욱 커졌다. 미소금융과 함께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주도한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 다양한 서민금융제도를 도입해 서민들의 사채부담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2012년에는 불법 사금융으로 고통을 받는 금융 약자를 위해 불법 사채업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또한 금융감독원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를 운영해 억울한 피해자를 찾아내고, 이들에게 법률적 자문과 저금리 대출 전환 등을 지원했다.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든든학자금(ICL)’도 같은 취지의 정책이었다. 든든학자금이란 대학을 다닐 때 이자 부담 없이 학자금을 대출해 사용하여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제도다. 대출금은 졸업 후 직장을 얻고 소득이 생겼을 때부터 갚도록 했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할 뻔했고, 새벽에 시장을 청소해 학비를 마련한 나로서는 남다르게 애착이 가는 정책이었다.

 

3세에서 5세까지 유아들의 표준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보육비를 지원한 누리과정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회의 균등과 실패한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같은 취지의 정책이었다.

 

또한 극빈층이나 사회적 약자인 노약자와 장애인 등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자 했다. 자력으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정부가 조건 없이 지원함으로써 적정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임기 5년 동안 복지 지출 증가율은 8.1퍼센트로 정부 총지출 증가율 6.1퍼센트를 상회했으며, 2012년 복지 분야 재정 규모는 정부 총지출의 28.5퍼센트(926,000억 원)로 역대 정부 중 최고를 기록했다.

 

질적인 개선도 병행했다. 방만한 복지를 벗어나 꼭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이 적기에 돌아갈 수 있도록 맞춤형 복지를 추진했다. 보호가 필요한데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발굴하는 한편, 사회복지 통합관리망을 구축하여 부정수급자를 적발함으로써 매년 수천억 원을 절감하는 등 복지전달체계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도 진전이 있었다. 2007년까지 급격하게 악화되던 양극화지표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지니계수, 소득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중산층 비율 등 모든 분배지표들이 2010년부터 매년 꾸준히 개선됐다. 그러나 세계금융위기라는 역풍 때문에 재임 중 서민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웠다.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무상복지 논쟁

 

2010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무상급식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모든 초·중등 학생에게 무료로 급식하자는 것이었다. 무상급식은 여야 간에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시장 시절의 일이다. 하루는 어느 대기업 회장이 연락해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자기에게 매달 노인 교통수당으로 돈이 나오고 있는데, 적은 금액이지만 이 돈이 꼭 필요한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고령자에게 일괄적으로 매달 교통수당 명목으로 12,000원씩 지급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 말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정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그러자 대상을 가려내는 데 드는 행정비용이 비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예산보다 더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괄 지급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의견이었다. 기가 막혔다. 2010년 무상급식 논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회장의 자녀나 손자들에게까지 국가가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전면 무상급식을 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부유층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기보다는 우선 시급한 복지수요가 많았다. 저소득층에 지급해야 할 복지예산을 전면 무상급식에 쏟아 부을 수는 없었다. 우리 정부를 부자정권이라 비난하던 민주당이 부자들에게까지 복지 혜택을 주겠다고 나서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다.

 

복지는 혼자 설 수 없는 서민들에게 집중돼야 한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 민주당은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를 무차별 복지’, ‘정략적 복지라 생각했다.

 

재정위기를 겪은 유럽의 선진국들은 그동안 무분별하게 확대된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정부 역시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사상 최대의 복지 예산을 편성하여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때였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에 빠져 유럽 선진국들의 과거 잘못된 길을 답습하려 하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무상급식을 저소득층에게만 실시할 경우 아이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정부는 학교가 아니라 저소득 가구에 직접 급식비를 전달하는 방법 등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면 저소득층 가구의 학생들은 눈치 보지 않고 급식을 받을 수 있어 민주당이 우려하는 낙인 효과를 예방할 수 있었다.

 

정부의 이런 대안에도 민주당은 전면 무상급식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세운 민주당이 승리하자, 2011년에는 정치권에서 반값 대학등록금주장이 제기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이에 동조하면서 반값 등록금 문제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부각됐다.

 

대학등록금 문제는 나 역시 취임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19881993)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 이후 대학등록금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20042008)에도 대학 등록금은 사립대 35퍼센트, 국립대 54.7퍼센트가 올랐다. 그로 인해 중산층 가정까지도 등록금 부담에 어려움을 겪었다.

 

심각한 문제였다. 대통령이 된 후 나는 대학 측에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최소한으로 인상할 것을 설득했다. 그 결과 취임 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대학등록금 인상률은 사립대 4.5퍼센트, 국립대 3.9퍼센트로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야권은 마치 우리 정부가 등록금 인상의 주범인 양 공세를 폈다. 동시에 대학등록금을 일률적으로 반값으로 인하하고, 그 차액을 정부가 보조해줄 것을 요구했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당시 정부가 대학등록금의 상당 부분을 보조하던 유럽 국가들은 그 부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정부 지원을 줄이고 등록금을 인상하는 정책을 쓰고 있었다. 영국 의회의 경우 20129월 학기부터 연간 3,290파운드(당시 환율 기준 590만 원)이었던 등록금 상한을 9,000파운드(1,620만 원)로 세 배나 올렸다. 최근 OECD에서도 회원국들에게 각국의 고등교육비 지원제도를 수익자 부담원칙에 걸맞게 개편해 수요자인 대학생 부담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등록금 문제는 정부의 지원에 앞서 대학의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해결할 수 있다. 교육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편승해 간판만 내건 부실 대학이 적지 않다. 대학의 이런 문제를 방기한 채 정부가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은 대학의 부실을 키울 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 집중해야 할 복지원칙에도 어긋난다.

 

대학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며, 그 혜택은 인적자본이 축적되는 형태로 당사자인 대학생에게 돌아가므로 자기책임원칙이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또 대학생은 장차 고소득층에 속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도 등록금 부담을 일반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다만 장차 나라의 동량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녔거나 학업성취도가 탁월한 인재들에 대한 장학금 지급은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대학생이 당장 등록금을 부담할 여력이 없는 점을 감안하여,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그의 인적자본(장래의 소득원)을 담보로 정부나 공적 금융기관이 학자금을 대여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나는 2010년 든든학자금을 만들었다. 이는 등록금을 일단 국고로 대여해주고 해당 대학생이 취업하면 장기간에 걸쳐 상환하는 제도였다. 그리고 한국장학재단을 신설해 든든학자금을 전담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대학의 경영 합리화와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등록금 합리화 대책을 세웠다. 평가를 거쳐 부실 대학에는 든든장학금을 위한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조치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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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7-12-25 01:23:33 평안한 성탄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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