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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을 돌보다이명박 | 2017.12.22 | N0.144

전통시장을 돌보다

 

나는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을 때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야간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당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거리를 전전할 때는 청계천 헌책방 주인의 도움으로 대학시험을 치렀다. 이태원 시장 상인들이 일자리를 주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등록금을 마련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아니었고, 내게 물질적 도움을 준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그들은 내가 가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매달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얻었고, CEO가 됐으며,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대통령으로 국가에 봉사할 수 있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덕분에 나는 정치를 시작하면서 서민들의 삶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서울시장 시절 복지 사각지대에서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한 고등학생들을 위해 하이서울 장학금을 도입했다. 치매 노인들 때문에 고통을 겪는 가정을 돕기 위한 전문시설을 만들고, 중증 장애인을 위한 콜택시와 저상버스를 도입했다. 서민정책은 서울시장 시절 시정 운영의 중심이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도 서민들의 삶은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취임 직후인 200838일 자양동 골목시장 방문을 시작으로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2008124,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박부자 할머니를 만난 일이었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초겨울 새벽 시장의 추위는 매서웠다. 시장을 둘러보던 중 플라스틱 박스 위에 무시래기 좌판을 하는 할머니가 보였다. 이태원 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위로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품에 안겼다.

 

대통령이 잘되셔서 좋은 나라 만들어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드려도 모자랄 판에 할머니는 나를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시래기는 어디서 나는 거예요?” “그 전에는 시래기를 버리고 해서 거저 얻었는데, 요즘은 없어요. 사다가 만드는데 이익이 별로 안 나요.” “옛날엔 다 버렸는데, 이제는 사다가 만들어요? 하루에 얼마 버세요?” “전엔 5만 원 벌었는데, 사서 하면서 한 2만 원, 많이 팔면 3만 원 정도 벌어요.”

 

하루 23만 원을 벌려고 엄동설한에 새벽부터 나와 장사하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나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할머니에게 둘러드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이거 내가 20년 아껴 쓰던 건데 그냥 드려야겠어요.”

 

그러고는 한 단에 5,000원 하는 시래기 넉 단을 샀다. 한사코 돈을 안 받겠다고 하는 박부자 할머니 손에 억지로 2만 원을 쥐어주고 돌아서는데 또 한 번 콧날이 시큰했다. 재래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상인들은 주변 마트 등에 손님을 빼앗겨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명절 때면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이 발걸음을 하지만 그때뿐이고,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재래시장의 매출도 늘리고 젊은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먼저 낙후된 이미지의 재래시장이란 명칭부터 전통시장으로 바꾸도록 했다. 또한 전국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전통시장 상품권을 개발하도록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온누리 상품권이다.

 

전통시장 살리기에는 대기업들이 많이 동참했다. 대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보너스의 일부와 명절선물로 온누리 상품권을 지급했다. 이런 노력들 덕분에 전통시장은 매출도 늘고 젊은 고객을 새롭게 유치할 수 있었다. 온누리 상품권은 내가 퇴임하기 직전인 2012년 말까지 도입 3년 만에 7,300억 원어치가 넘게 팔렸다. 온누리 상품권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특히 온누리 상품권을 쓸 수 있는 온라인 전통시장관에 재래시장 상품이 아닌 외국산 상품이 판매되는 문제라든지, 기업 직원들이 상품권을 인터넷에서 현금화하는 문제 등의 부작용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의 장점을 포용한 서민금융

 

2009622,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문제가 논의됐다.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박형준 홍보기획관이 여론 동향을 보고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대선 당시 지지자의 상당수가 지지층에서 이탈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중교통체계 혁신, 청계천 복원 등으로 형성된 친서민·개혁 이미지가 많이 퇴색한 결과로 보입니다. 지지층 이탈의 최대 원인은 서민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조사됐습니다. 서민 중심으로 국정 기조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 수석은 우리 사회 전반적인 동향과 여론 분석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 정부의 친서민정책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를 잘 넘기고 있었지만 내수는 여전히 침체 상태였고 서민들의 삶은 고달팠다. 취임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정책과 감세정책은 야당의 공세 탓에 친대기업부자감세정책으로 낙인찍혔다. 더구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려다 보니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고, 환율도 종전보다 높아지면서 물가가 올라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참모들에게 이 같은 상황을 거론하면서 서민 경제에 각별히 신경 쓸 것을 당부했다. “서민 경제에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 미소금융)은 진보 진영에서 제안해왔습니다. 보수 쪽에서는 이런 부분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진보적인 정책도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제도를 확대했으면 합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은 빈곤층의 영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무담보소액 대출을 말한다. 1976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Grameen Bank)에서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나는 이를 확대하면 영세한 소상공인과 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 통합이라는 것이 거창한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의 가치는 지키되, 중도라는 개념에서 좀 더 포용적으로 진보의 장점을 받아들여 모두가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단순히 마이크로크레딧정책의 확대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서민정책에 대한 보수와 진보 양쪽의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보수 진영은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친시장정책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다고 여겼다. 반면 진보 진영은 복지를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이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노동자의 권익 등을 중시했다.

양 진영은 서로의 정책을 비판하며 갈등을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양 진영의 입장이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상충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의 장점을 취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함께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진행하는 것이 화해와 국민통합의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그것이 서민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했다.

 

일례로 서울시장 재임 시 시내버스 운행 시스템에 준공영제를 도입하자, 이를 두고 사회주의정책이라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이념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것을 실용이라 생각했다.

 

그와 같은 취지를 전달하자 이동관 대변인이 언론에 곧바로 브리핑하겠다고 나섰다. 이 대변인은 언론인 출신으로 대선 기간 중 홍보를 맡았고, 청와대에 있는 동안에도 명대변인으로 그리고 홍보수석으로 큰 역할을 했다.

 

논의된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중도 강화론이라는 주제로 언론에 보도됐다. 이 대변인은 이를 두고 ‘MB다움의 회복이라 표현했다. 취임 전부터 내가 표명한 중도실용의 국정 철학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후 내부적인 논의와 검토를 거친 후 2009815, 광복절 연설에서 나는 국민에게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화합과 통합의 구심력을 만들어내려면 중도실용의 길을 가야 합니다. 중도는 대한민국을 이끌어왔던 헌법정신,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길입니다.”

 

새로운 국정 지표로 친서민 중도실용을 표방하자 보수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 보수의 선명성을 버리고 중도를 내세우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발상이라는 것이었다. 예상됐던 비판이며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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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웅 2017-12-23 14: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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