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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명품 도시로이명박 | 2017.12.08 | N0.138

세종시를 명품 도시로

 

당시 나는 서울시장에서 퇴임하고 17대 대선 운동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이미 대규모 국가 예산이 투입돼 수도 분할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다면, 실용적인 측면에서 더 큰 효과를 내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선거가 한창일 때 인터뷰를 요청해온 한 언론이 세종시 문제를 질문했다.

 

이명박 후보께서는 과거 세종시 건설에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어떠십니까?” “저는 국가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충청권은 물론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세종시가 이미 상당히 진척되었기 때문에 계획의 번복은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진정한 충청권 발전을 위해 추가적인 정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2007117일 나는 세종시를 명품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행정부처 이전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왕에 확보한 2,200만 평의 부지를 알뜰하게 활용하여 충청권과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절실했다.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한 일종의 타협책이었다. 이때 고심을 거듭하며 준비했던 방안이 나중에 세종시 수정안의 하나로 제시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비벨트)’였다.

 

11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과비벨트는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대선에 출마하기 전인 2006년부터 야심차게 준비한 공약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주도해 전국 각지에 건설 중이던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도 세종시와 마찬가지로 마땅한 콘텐츠가 없어 수백조 원의 건설비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이러한 기존의 개발 예정지들에 기초과학과 비즈니스를 접목한 미래 성장 동력 콘텐츠를 부가하는 업그레이드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준비한 과비벨트 프로젝트가 자연스럽게 세종시의 실절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었다.

 

 

 

 

경제부처가 세종시에 있었다면

 

광우병 사태가 잦아든 20087월 중순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세종시에 관해 보고했다. “행정안전부가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른 세종시 이전 대상 기관명칭에 대해 변경고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심사숙고를 위해 고시를 연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임 정부가 세종시 이전 계획을 발표한 이후, 우리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정부부처 조직 및 명칭이 변경됐다. 따라서 행정안전부는 이를 반영할 세종시 이전 계획 변경고시를 추진하고 있었다. 박 수석은 이를 연기하여 세종시 문제에 대해 좀 더 숙고를 하자는 입장이었다.

 

박 수석의 입장은 기존 세종시 이전계획의 자족 기능이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정부부처만 쪼개어 이전한다고 해서 충청권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박 수석은 세종시의 부실한 자족 기능을 확충하는 방안을 721일 제1차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할 지역발전추진전략에 원론 수준에서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최상철 전 서울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였다.

 

박 수석은 또 세종시 청사 공사를 곧 착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종시 청사는 총 4단계로 나뉘어 건립되는데, 국무총리실이 입주할 1단계 1구역은 20086월에 설계가 끝났기 때문에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 등 열 개 기관이 들어설 1단계 2구역도 20094월 설계가 끝날 예정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매몰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2009년 상반기까지는 세종시 문제를 결정해야 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던 중 20089,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했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는 1997년에 이어 또 한 번 외환위기를 겪을 상황에 처했다. 나는 다시는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비상경제체제를 꾸리고 필요하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회의를 소집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곧 바로 회의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현장을 방문했고 기업인들과 민간 전문가들에게 수시로 의견을 물었다. ·차관들도 시도 때도 없이 청와대에 모여 현안을 논의했다. 조찬 회의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나 열렸다.

 

과거 부처 간의 협의에 몇 달이 걸리던 정책들이 한나절 만에 결정되고 집행됐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각 부처의 장·차관들이 신속하게 논의한 결과였다. 그 같은 노력의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8년 하반기만 해도 우리는 아시아에서 국가부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외신에 보도됐었다. 그러더니 2009년 말에는 어느덧 세계 금융위기를 교과서처럼 극복한 모범국가로 공인받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보람된 시기였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세종시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경제부처가 세종시로 내려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서늘했다. 촌음을 다투었던 경제위기의 와중에는 과천 청사조차 멀게 느껴졌다.

 

앞으로 또 이런 위기가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정부부처 일부가 세종시에 가 있다면 이 같은 신속한 위기 대응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종시 문제는 단순히 국가 효율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수도 분할은 다시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선 때 세종시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내가 다시 입장을 바꾼다면, 그 정치적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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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이충웅 2017-12-08 04:45:50 수정안 부결은 가슴 아펏습니다
  • 이충웅 2017-12-08 04:52:00
  • 이충웅 2017-12-08 04: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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