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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에 최루탄 투척까지이명박 | 2017.08.25 | N0.104
몸싸움에 최루탄 투척까지

나는 손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ISD 조항은 민주당 정권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민주당 정권 때 위원회까지 결성해 만들어놓은 조항을 왜 이제 와서 문제 삼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그것을 따지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어 미국과의 ISD 조항 재협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가 미국 측에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반드시 응해야 합니다. ISD 조항이 문제라면 한·미 FTA 발효 후 재협상을 요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협정문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후 우리가 요구하면 재협상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재협상 절차가 개시되면 미국은 의무적으로 협상에 응해야 했다. 그러나 발효 이전에는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할 근거가 없었다. 나는 그 점도 손 대표에게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법률가입니다. 그런데 정해진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재협상하자고 하면 우리를 우습게 볼 것입니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의 국격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우리가 무슨 미국의 종속국도 아닙니다. 미국이 절차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어 나는 손 대표를 비롯해 한·미 FTA를 반대하는 야당 인사들 모두에게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오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오바마 대통령의 말만 믿습니까? 한국 대통령의 말을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 한·미 FTA 발효 후 국회에서 원한다면 제가 책임을 지고 오바마와 협의하겠습니다.”

그러나 손 대표의 입장은 완강했다.

“저희는 발효 전 한·미 FTA 폐기를 전제로 재협상을 요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미국이 재협상을 약속하는 문건은 있어야 된다는 것이 저희 민주당의 요구입니다. 발효 후 재협상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것만으로는 민주당이 비준에 응하기 어렵습니다.”

발효 후 재협상을 통해 ISD 조항을 한·미 FTA에서 삭제하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받아오라는 요구였다. 재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재협상 결과를 미리 약속한다는 것은 국제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러저러한 문제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얼마간의 자기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큰일을 결단하는 것이 정치인이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죽는 것 같아도 결국은 사는 길입니다. 한·미 FTA가 발효되어도 제 임기 동안 얻을 수 있는 실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정권은 탄탄대로를 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것이 옳은 길이기 때문에 추진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세요.”

결국 일주일 뒤인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은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여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본회의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국회경호권이 발동된 가운데 본회의장 단상에서는 격렬한 몸싸움과 함께 온갖 욕설이 오갔다.

급기야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국회 단상에 투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상 초유의 국회 최루탄 투척 사태는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보도됐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앞서 2008년 한·미 FTA 법안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를 통과할 때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해머와 전기톱, 소화전, 소방호스까지 동원해 회의장의 문을 부수는 사태가 있었다.

그 후 외신을 통해 이 장면을 본 각국 정상들이 심각한 얼굴로 내게 “그게 무슨 일이냐? 테러 아니냐?”고 질문할 때마다 아주 곤혹스러웠던 것을 기억한다.

한·미 관계가 군사 동맹에 더해 경제 동맹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 한·미 FTA 체결 당시 전 세계가 부러워했다. 역사적인 한·미 FTA 비준이 그처럼 혼란스러운 가운데 통과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가 발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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