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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말 바꾼 지도자들이명박 | 2017.08.23 | N0.103
한·미 FTA, 말 바꾼 지도자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임기 중 한·미 FTA 이행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업계의 지지를 등에 업은 민주당 하원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부시의 뒤를 이어 민주당 오바마 정부가 들어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오바마가 당선되자 우리 언론은 한·미 FTA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평가했다. 엄격히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미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한·미 FTA에 반대했다. 나는 오바마를 설득할 수 있다면 민주당의 반대도 무마될 수 있다고 봤다. 앞서 3장에서 자세히 언급했지만, 나는 오바마 설득에 집중했고 그 결과 2011년 10월 한·미 FTA 이행법안이 미 의회에서 전격 처리됐다.

남은 것은 한국의 국회 비준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반발로 한·미 FTA 국회 비준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비준에 반대한 야권 인사의 상당수는 안타깝게도 과거에는 한·미 FTA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2006년에 “한·미 FTA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국가 생존 전략”이라며 적극 찬성했었다. 그러나 민주당 대표를 맡은 뒤에는 한·미 FTA 비준을 강력히 반대했다.

손 대표의 뒤를 이은 한명숙 대표는 더욱 강경하게 한·미 FTA에 반대했지만, 앞서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총리 시절 “한·미 FTA 타결을 확신한다”며 “한·미 FTA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07년 당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한국으로서는 향후 5년간 미국 및 일본과의 FTA를 완료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등의 발언을 했으나 2011년에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와 천정배 의원,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등도 한·미 FTA를 찬성하던 입장에서 반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당시 민주당은 2010년 12월 타결된 재협상 결과를 문제 삼았다. 재협상에서 우리 협상 팀은 노무현 정부가 타결한 원안 가운데 자동차 등 사안의 일부를 미국에 양보하는 대신, 의약품과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은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다. 민주당은 자동차로 인한 손실이 의약품과 농축산물로 얻는 이익보다 크다는 이유로 이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예를들어 민주당도 집권 시절 한·미 FTA를 타결할 때 5,000만 달러 규모인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조건으로 최소 30억 달러 규모인 조선산업을 포기했다. 더군다나 재협상이 자동차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바마 정부가 미국 자동차업계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면서 우리 농민과 중소기업에게는 이득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작 민주당이 재협상의 피해 당사자로 지목한 우리 자동차업계는 재협상 타결을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자 민주당은 민주노동당과 재야단체들이 제시한 ‘12개 독소조항’을 내세워 ‘10+2재재협상’을 요구했다.

어떤 정책이든 반대 의견이 있기 마련이다. 반대와 비판이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정책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이고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때로 국내 반대 여론이 FTA 협상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미 FTA 12개 독소조항’이란 주장은 그런 수준을 한참 벗어난 내용이었다. 대부분이 사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과장하고 있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명분을 죄다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한때 집권 여당으로서 한·미 FTA를 타결했던 민주당이 이제와서 반대를 주도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민주당이 요구한 ‘10+2 재재협상’이란 열 가지 한·미 FTA 항목에 대해 미국과 재협상을 하고, 통상절차법을 제정하며, 무역조정지원제도를 강화해달라는 요구였다. 열 가지 항목 중 아홉 가지는 전임 정부 시절 타결된 내용으로 이러한 요구는 민주당의 자가당착이었다.

나머지 한 가지가 내 임기 들어 미국과 재협상 과정에서 타결된 자동차 세이프가드 문제였으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작 우리 자동차업계는 이를 문제 삼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또한 통상절차법 제정은 국회에서 여야가 이미 의견 접근을 본 내용이며, 무역조정지원제도 역시 민주당이 원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농수산업 피해 대책으로 24조 1,000억 원을 책정했다.

10+2 재재협상 요구의 문제점이 부각되자 민주당은 그중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ISD란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 법령에 의해 부당한 피해를 입을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게 하는 제도였다. 강대국과의 투자 협정에서 약소국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ISD로 한국이 미국 기업의 소송 천국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ISD 조항 역시 노무현 정부 때 타결된 내용으로 우리와 투자 보호 협정을 체결한 83개국 중 81개국과 이미 체결된 조항이었다.

한·EU FTA를 체결할 때도 ISD 조항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미국과의 FTA에서만 민주당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민주당이 미국과의 FTA에서 ISD 조항을 걸고 나선 의도는 당시 서울 시가지에서 계속됐던 한·미 FTA 반대 시위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진보단체들의 주도로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에서는 한·미 FTA 반대 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시위는 한·미 FTA를 미국에 의한 한국의 종속구조를 심화시키는 구도로 보고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시위의 주동세력은 단체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광우병 사태, 제주 해군기지 건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비롯해 각종 국책 사업 반대 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한·미 FTA는 경제와 정치 영역을 넘어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비화된 상황이었다. 민주당 인사들도 이 시위에 대거 참여했다. 당시 민주당은 ISD 조항을 문제 삼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한·미 FTA 자체를 무산시키려 한 게 아닌가 생각됐다.



국회를 찾아가다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2011년 10월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관위원장의 5부 요인과 여야 대표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내가 방미 결과를 설명하자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말했다.

“대통령께서 미국을 국빈 방문하신 성과를 이번 주 중에 국회에 오셔서 연설을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번 방미의 최고 성과는 한·미 FTA 이행법안의 미 상·하원 동시 통과였다. 홍 대표의 말은 한·미 FTA 비준을 촉구하는 국회 연설을 하라는 의미였다. 나 역시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당이 반대한다면 내 국회 연설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가만히 듣고 있던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이야기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 같은 예산 시정연설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한·미 FTA라는 쟁점이 있어서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미 FTA 재재협상을 요구하며 내 국회 연설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한·미 FTA 비준안이 미 의회를 통과한 상황에서 재재협상을 벌이게 된다면 내 임기 중 한·미 FTA 발효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민주당은 한·미 FTA를 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이날 오찬은 별다른 진전 없이 끝났다. 나는 어떻게든 한·미 FTA 비준이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처리되기를 기대했다. 심층 논의를 위해 국회에 ‘한·미 FTA 후속대책특별위원회(FTA 특위)’가 출범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여야 동수의 의원들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 정부위원들도 참여했다. FTA 특위는 수차례 회의를 열어 일부 사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여야의 기본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며 시간만 흘러갔다. 고민이 깊어가던 차에 김효재 정무수석이 말했다.

“대통령님, 이렇게 계속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국회를 방문하셔서 설득해야 합니다. 야당이 끝까지 반대를 하더라도 대통령이 국민에게 야당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김 수석은 언론인 출신의 초선의원으로 18대 국회에 들어갔다. 담백하고 화통한 성격에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으로, 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을 맡아 정치력을 발휘했다. 2011년 의원직을 사퇴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들어와 당·정·청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1년 11월 15일 나는 국회를 찾았다. 국회 연설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를 직접 만나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의장 접견실에 도착하니,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여야 대표들이 모여 있었다. 손 대표가 말했다.

“대통령께서 국회를 방문하신 것이 야당에 대한 압박용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기다리시는데 저희가 나오지 않는다면 국민이 야당과 국회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대통령께서 저희가 안 나올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국민을 상대로 야당 대표를 볼모로 잡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에 관한 민주당의 입장은 변함없고 분명합니다.”

손 대표는 ISD 조항 폐기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오바마에게 서면으로 받아오지 않는다면 한·미 FTA를 비준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민주당의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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