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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대국의 꿈이명박 | 2017.08.21 | N0.102
8장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하여

23. 세계를 경제 영토로, 동시다발 FTA

통상대국의 꿈

2011년 12월 5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대기 경제수석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보고했다.

“오늘 중 무역 1조 달러가 달성될 전망입니다.”

미리부터 점검하고 있던 사항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 세계에서 무역 1조 달러를 넘긴 나라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등 여덟 국가에 불과했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탈에 시달렸던 우리나라가 이제 내로라하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통상대국으로 우뚝 선 것이다. 건국 63년 만에 일구어낸 쾌거였다.

무엇보다도 두 차례의 거센 세계경제위기로 무역량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달성한 성과여서 더 의미가 컸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10년까지 전 세계 교역량은 6.2퍼센트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의 교역량은 4퍼센트 증가하면서 이 같은 성과를 달성한 것이다.

가만있을 수 없었다. 현장을 방문해 기업인들에게 격려와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그날 오후 서울 삼성동 무역협회를 방문했다. 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인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그중에는 일주일 뒤 개최되는 무역의 날 행사에서 ‘수출의 탑’을 수상할 기업인도 있었다.

“저는 1977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해 12월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저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수출의 탑을 받았습니다. 34년이 지나 이제는 제가 대통령으로서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기념하며 여러분에게 수출의 탑을 수여하게 됐습니다. 감회가 남다릅니다.”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중화학공업이 중심이었던 현대그룹은 내수보다는 수출에 주력했다. 조선, 자동차, 자원 개발, 종합상사 등 대부분의 사업이 해외 지향적이었다. 나는 30대에 현대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의 CEO를 맡아 주로 해외 사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 같은 경험은 내게 중요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인구는 많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자원이 부족하다. 내수시장은 빈약하다. 이런 여건에서 우리가 생존할 방법은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독일의 광산과 병원에서, 중동의 사막에서,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흘린 우리 근로자의 피땀과 눈물이 있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해외시장을 개척한 우리 기업인의 도전정신이 있었다. 수출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발전시킨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성장 동력이 급격히 소진되기 시작했다. 세계화로 인한 무한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국과 개도국들이 우리를 위협해왔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2007년 배럴당 68달러 하던 유가가 2008년 7월 147달러까지 상승하는 등 국제원부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여기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수출 여건은 더욱 악화됐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부가 힘을 합친 결과 우리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일구어 낼 수 있었다.



참모들도 “정치적으로 손해”

무역센터를 나오면서 나는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여전히 경제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출산·고령화까지 겹치며 경제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세계 주요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여 경제 영토를 넓히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라 생각했다.

FTA는 시장을 확대하여 기업의 수출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 우리 국민의 일자리와 소득을 늘린다. 소비자에게는 선택의 폭을 넓혀 다양하고 질 좋은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나아가 서비스산업처럼 우물 안에 갇힌 분야를 글로벌 경쟁에 노출시켜 자구 노력을 기울이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내수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고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 FTA 체결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다.

안보 측면에서도 FTA는 긍정적이다. 우리와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안전한 대한(對韓) 무역 및 투자 활동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게 된다. FTA는 경제동맹을 넘어 안보동맹의 효과까지 갖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를 추진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노 대통령 임기 중 한·미 FTA는 양국 의회의 비준을 받는 데 실패했다.

나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세계 각국과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고 선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EU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웃한 중국, 일본은 물론 자원 협력과 신흥시장 개척을 위해 다양한 국가들과 새로운 FTA 체결도 필요한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볼 때 FTA 체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산물이나 축산물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업종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FTA가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재앙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막연한 두려움은 곧잘 대대적인 FTA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정부는 피해 예상 업종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불안감을 떨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런 불안 심리를 부추겨 반사적 이익을 얻고자 했다. 그로 인해 FTA체결은 경제 분야를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4년 칠레와 FTA를 체결할 때, 칠레산 포도가 수입되면 우리 포도 농가가 큰 타격을 입어 농사를 접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농민들은 거리로 나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민주노동당을 주축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농촌 출신 의원들도 반대 시위에 가세했다. 당시 반대 서명을 한 국회의원만 100명이 넘었다.

국회 비준 역시 난항을 겪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포도, 복숭아, 키위 농가에 대해 폐업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하고 한·칠레 FTA를 발효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복숭아는 검역 문제로 정작 칠레로부터 수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가들이 복숭아나무를 베어버리는 사태가 빚어졌다. 2010년까지 복숭아 농가에 지급된 폐업 지원금만 1,800억 원에 달했다.

한·칠레 FTA가 발효된 지 10년이 지난 2014년 현재, 초기의 염려와 달리 국내 포도 농가 소득은 오히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칠레산 포도와 경쟁하기 위해 거봉과 청포도 등 고품질 상품을 개발한 결과였다. 포도나무를 베어버린 농가들까지도 이제는 포도나무를 다시 심고 있다.

포도의 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로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국내 영화업계가 망할 것이라며 배우들이 삭발하고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이후 오히려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올라갔고,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우리 영화산업은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무역 개방은 경쟁력이 부족한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FTA 확대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FTA로 이익을 보게 될 대다수 국민은 찬성 활동에 적극 나서지 않지만,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 종사자들의 반대와 정치적 공세는 매우 거세기때문이다. 더구나 FTA는 그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나타나므로 다음 정부나 그다음 정부에서 결실을 맺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 측면에서만 보면 FTA를 대대적으로 확대할 이유가 없었다. 여당 내에서도, 청와대의 정무 분야 참모들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 역시 FTA를 추진하면서 지지 기반이 이탈하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FTA 체결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넘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문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치적으로 손해가 되더라도 국익차원에서 반드시 FTA를 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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