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이야기
HOME > 짧고도 긴 역사 > 회고록 이야기
베트남 찌엣 주석과 형제의 의를 맺다이명박 | 2017.08.16 | N0.100
베트남 찌엣 주석과 형제의 의를 맺다

2009년 10월 베트남 국빈 방문을 앞두고 베트남 정부로부터 강력한 항의가 들어왔다. 당시 국가보훈처가 입법 예고한 ‘국가유공자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국가보훈처는 개정안 입법 취지에서 “세계 평화유지에 공헌한 월남전쟁 참전용사”라는 표현을 썼다. 베트남 정부가 문제 삼은 것은 이 문구였다. 이는 베트남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었다.

베트남은 우리와 악연이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1992년 수교 후 한·베트남 관계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빠르게 발전해왔다. 2009년까지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200억 달러에 달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 다음으로 두 번째 투자 대상국이고, 베트남의 입장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투자국이 됐다.

양국 관계의 전망도 밝다. 베트남은 아세안, 중국, 인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자원부국이다.

나는 아세안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이자 주요 협력 파트너로 한·베트남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또한 베트남의 개혁개방이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2009년 10월 베트남 국빈 방문에 매우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국가보훈처가 국회에 상정한 법안으로 베트남 방문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나는 과거의 역사가 양국의 미래 관계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양국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을 방안으로 개정안을 수정하도록 지시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 부분 중 “세계평화유지에 공헌한 월남전쟁 참전용사”라는 표현에서 ‘월남전쟁’이라는 단어를 빼기로 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베트남에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전하고 오해를 풀었다.

2009년 10월 20일 예정대로 베트남 국빈 방문이 이루어졌다. 방문 첫날 하노이 시에 있는 삼성전자에 들렀다. 현지 공장을 시찰하던 중 한 젊은 여직원이 책 한 권을 들고 와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내가 쓴 《신화는 없다》였다. 이 책은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있지만 그 여직원이 들고 온 책은 한국어판이었다. 사인을 해주자 여직원은 내게 편지를 건넸다. 베트남국립대학을 졸업하고 하노이 삼성전자에 입사했는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직원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는데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날 오후에는 베트남국립대학을 방문해 한국어과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한국어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삼성전자 여직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다른 어느 국가의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도 행복한 일이며, 자신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내 얘기를 듣는 학생들의 눈에 서 한국어과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 날 응웬 밍 찌엣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하노이 주석궁에서 만찬을 가졌다. 베트남 전통음식을 함께하던 중 나는 찌엣에게 말했다.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가까운 친구가 됐습니다.”

그러자 찌엣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친구가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제가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으니 제가 형입니다. 그리고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저의 제수씨가 되는 거지요.”

나는 웃으면서 연배를 따져보자고 했다. 확인해보니 내가 한 살이 위였다. 그러자 찌엣은 다시 말했다. 

“대통령께서 형이고 제가 아우입니다. 그리고 김윤옥 여사는 저의 형수님입니다.”

“주석님 부인은 저의 제수씨가 되시는 거지요.”

내가 웃으면서 답변하자 찌엣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양국 관계가 발전한다면 일차로 서로 이해하는 단계에서 다음은 신뢰하는 단계, 나아가 서로 사랑하는 단계가 될 터인데 이제 두 나라는 서로 사랑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노이산 보드카를 마시며 형제의 우정을 다졌다. 이날 만찬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밤늦게야 끝났다. 만찬이 끝나고 헤어질 때도 찌엣은 손을 흔들고 포옹하며 아쉬워했다.

2009년 국빈 방문을 통해 한·베트남 관계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차관급 전략 대화를 신설하고, 한·베트남 FTA 추진 작업반을 설치하는 등 많은 합의를 이루어냈다.



베트남 신부 살해 사건의 충격

2010년 7월 나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의 어린 신부가 신혼살림을 차린 지 8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우리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하며 많은 성금을 보냈다. 우리 정부도 베트남 정부에 사과의 입장을 전했다. 나는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법무부에 국제결혼의 문제점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주한 베트남 대사를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내 이름으로 조의금을 전달하도록 했다.

2010년 10월 30일 나는 취임 후 두 번째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정상회담이 시작되자 찌엣이 말했다.

“지난번 베트남 신부 사건에 대해 대통령께서 잘 처리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어떤 면에서 베트남 신부 살해 사건은 민간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정부가 책임질 사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노력을 기울였다. 찌엣은 그 점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한 것이었다.

“불행한 사건으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가지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베트남 신부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찌엣은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베트남 신부 사건은 결과적으로 한·베트남 양국 사이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2011년 11월 찌엣이 한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한·베트남 관계는 한층 두터워졌다. 베트남 주석의 한국 방문은 10년 만의 일이었다.

같은 공산권 국가로 과거 북한과 긴밀한 관계였던 베트남은 이제 우리 정부의 북한 비핵화 조치를 지지하며 북한의 어떤 무력 도발에도 반대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베트남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큰 힘이 됐다. 또한 양국이 공동으로 마련한 베트남 원전건설종합계획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베트남의 공업화와 현대화를 위한 양국의 협력 체제는 더욱 긴밀해졌다.

과거 전쟁까지 했던 베트남과 형제의 우정을 나누게 된 데는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는 베트남 지도층과 국민의 성숙된 자세가 밑받침이 됐다. 나는 이를 매우 의미 있고 감명 깊은 일이라 생각한다.

나와 임기를 함께한 응웬 떤 중 총리와 찌엣의 뒤를 이은 쯔언 떤상 주석 역시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지도자들이었다.

2012년 말 내 임기를 불과 3개월 남겨두고 가진 정상회담에서도 중 총리는 “보다 많은 베트남 근로자들이 한국에 가서 일할 수 있도록 해줄 것”과 “보다 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해줄 것”을 당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베트남 경제를 위해 애쓰는 베트남 지도자들의 모습은 퇴임 후인 2014년 11월, 내가 한국 기업인 21명과 함께 베트남을 다시 방문하는 계기가 됐다. 상 주석이 우리 일행을 주석궁에 초청해 따뜻하게 환대하고 기업인들에게 만찬을 베풀어주는 것을 보면서 변함없는 깊은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