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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유도요노 내외와의 만남이명박 | 2017.06.30 | N0.99
22. 신아시아 외교Ⅱ: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유도요노 내외와의 만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타이,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로 구성된 아세안 10개국은 6억 명의 인구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최근 역동적인 발전을 이뤄나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우리에게 있어 정치, 외교,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제반 분야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주요 교역 대상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자원부국인 인도네시아는 2억 5,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다. GDP 규모 면에서 아세안 전체의 약 4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아세안의 중심 국가다. 신아시아 외교의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는 우리의 핵심 파트너로서 그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2008년 나의 대통령 취임식에 부통령을 보내 축하를 표했다. 이후 나는 2008년 7월 일본 도야코 G8 확대정상회의와 그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G20 정상회의에서 유도요노를 만났다.

2008년 11월 18일 남미 순방의 일환으로 브라질을 방문했다. 때마침 유도요노도 브라질을 방문하여 나와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다. 이날 오전 나는 아내와 함께 유도요노의 숙소로 찾아갔다.

유도요노 내외는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무런 의제도, 외교적 부담도 없는 격의 없는 자리였다. 나는 CEO 시절 인도네시아의 첫 고속도로인 자고라위 고속도로( Jagorawi Toll Road) 건설을 진두지휘한 인연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영부인 크리스티아니 헤라와티(Kristiani Herrawati) 여사에게 물었다.

“영부인께서는 오래전에 한국에서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제 부친께서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였습니다. 그때 1년 반 정도 한국에 살았습니다. 판문점, 설악산, 부산 등 한국의 여러 곳들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한국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헤라와티 여사가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자 유도요노가 거들었다.

“저도 당시 약혼자였던 아내를 만나러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설악산과 판문점은 가보지 못했지만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마치 가본 것처럼 눈에 생생합니다.”

유도요노는 1997년 인도네시아 외환위기 당시 외국 기업들이 모두 떠날 때, 함께 외환위기를 당해 어려웠던 한국 기업들이 끝까지 남아 있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나는 유도요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돌이켜보면 이날의 만남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사전에 양국 외교부끼리 실무적인 협상을 벌이고 합의된 의제만 확인하는 공식적인 정상회담보다, 이처럼 사적으로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경제개발의 주 파트너는 한국

2010년 12월 9일, 나는 발리 민주주의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이날 오전 발리에서 유도요노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나는 인도네시아 측의 성의에 깜짝 놀랐다. 정상회담에 인도네시아의 모든 각료와 3군 참모총장, 검찰총장 등이 모두 입회해 있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데 서울의 각료와 군 수뇌부를 모두 데리고 온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유도요노가 이 회담에 얼마나 큰 의미를 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유도요노가 말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께서 한국에 계셔야 할 만큼 사정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환영합니다.”

유도요노가 말한 ‘한국의 좋지 않은 상황’이란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의미했다. 당시 나는 연평도 포격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유도요노가 심혈을 기울인 발리 민주주의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1박 3일이라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것이다. 나는 유도요노에게 대답했다.

“국내 사정이 어렵지만 유도요노 대통령을 만나는 것 역시 보람되고 중요한 일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지난번 제주도 한·아세안 회의와 서울 G20 정상회의 때 어려움을 뒤로하고 한국을 방문해주시지 않았습니까?”

2009년 5월 제주도 한·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인도네시아는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유도요노는 빠듯한 시간을 쪼개 제주도에 왔다. 2010년 머라삐 화산 폭발로 인도네시아 국내 정세가 혼란스러울 때도 유도요노는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성의를 보인 바 있다.

“저희는 앞으로 10년간의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경제개발에 한국이 주 파트너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장관들과 한국이 주 파트너가 되고, 그다음에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파트너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포스코, 삼성, LG, 현대가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유도요노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다. 대외경제 관계의 90퍼센트가 일본과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만큼 인도네시아와 일본의 관계는 깊었다. 인도네시아가 경제개발 계획을 밝히자 일본은 철강 사업 등에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유도요노는 그런 일본을 제쳐두고 한국을 인도네시아 경제개발의 주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이날 회담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유도요노는 김정은의 나이를 물었다. 공식 나이는 28세로 안다고 대답했더니 자신은 장군이 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는데 김정은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인도네시아는 1955년 반둥에서 열린 AA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 반둥회의)에서 냉전 구도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 인도네시아가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내 임기 말인 2012년, 유도요노는 또다시 발리 민주주의포럼에 참석해달라고 초청해왔다. 11월 8일 유도요노는 내게 인도네시아 최고 훈장인 ‘아디쁘르나 훈장’을 수여하며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대한민국을 이끄시는 동안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로서 인도네시아와 함께해주셨습니다. 당면한 지역적·세계적 이슈를 위해 우리는 긴밀히 협력해왔습니다. 대통령님 재임 중 우리 양국은 경제, 교육, 노동, 에너지, 과학기술, 산림, 농업, 방산 부분에서 다양한 협력을 도출했습니다. 특히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 단 한 명의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돌려보내지 않았고, 고용허가제로 한국 근로자와 법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일하게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민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그 말을 듣고 임기 마지막 해에 나를 초청한 유도요노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나를 위해 송별식을 마련한 것이었다. 나는 유도요노가 대통령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한·아세안 회의에 참석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말했다.

“유도요노 대통령 내외께서는 정말 한국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가 정말 가족과도 같은 관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헤어지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유도요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진심 어린 눈물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퇴임 후 2013년 9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유도요노와 만찬을 같이했다. 이날 만찬에서는 정상 간 파트너십이 양국 협력에 어떤 시너지를 발휘했는지를 회상하며 굳건한 우정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듬해인 2014년 9월에는 유도요노가 우리가 만든 녹색성장 국제기구인 GGGI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9월 23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GGGI 의장직을 수락했는데 그 일주일 전인 9월 16일 전화 통화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님, 내가 왜 GGGI 의장직을 수락했는지 아십니까? 첫째는 이 대통령께서 GGGI를 설립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녹색성장 전략과 정책을 포함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우리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좀 비밀인데, 제 아내가 한국 음식을 즐기고 김윤옥 여사님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 해서입니다.”

나는 2008년 11월 브라질에서 두 내외가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만큼 두 내외가 서로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유도요노에게 대답했다.

“첫째, 둘째 이유도 중요하지만 셋째 이유가 참 좋습니다. 영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인 유도요노 대통령과, 영부인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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