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이야기
HOME > 짧고도 긴 역사 > 회고록 이야기
카자흐스탄, 사우나 초대에 폭탄주로 답례하다이명박 | 2017.06.28 | N0.98
카자흐스탄, 사우나 초대에 폭탄주로 답례하다

2009년 5월 12일,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과 오찬을 마친 뒤 중앙아시아 순방 두 번째 국가인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카자흐스탄은 석유 매장량 세계 9위, 우라늄과 크롬 매장량 2위를 비롯해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자원부국이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자유주의 시장경제로의 발 빠른 전환을 통해 연평균 7퍼센트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차세대 신흥시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날 오후 늦게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오늘 단둘이 개별 만찬을 갖자”며 숙소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는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사저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측 경호관들은 긴장했다. 결국 양측 경호 책임자 간 회의를 거쳐 나는 나자르바예프의 차를 타고 그가 청하는 장소로 이동하게 됐다.

이날 우리는 사우나 가운을 입은 채 다음 날 예정되어 있던 정상회담 의제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를 마쳤다. 사우나 초대는 카자흐스탄에서 최고 신뢰의 표현으로, 그때까지 러시아 푸틴 대통령 이외에는 초대받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는 당시 국내 언론에서도 ‘사우나 비즈니스’, ‘사우나 외교’ 등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이날 만찬은 파격적인 외교 사례로 손꼽혔다. 나 역시 해외의 많은 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런 이색적인 회담은 처음이었다.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니 속옷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옷을 입고 가운을 걸치자 나자르바예프는 체온이 떨어지면 안 된다며 내게 양말을 신겨주었다. 놀라울 정도의 세심한 배려였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카자흐스탄을 방문하기 전 나자르바예프는 한국 대사를 불러 내 취향을 물어봤다고 한다.

나는 그런 나자르바예프의 모습을 보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외국의 국빈이 방문하면 극진하게 잘 대접하라고 지시하면서도 이처럼 손수 챙길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자르바예프는 내게 독한 보드카를 계속 권했다. 나는 독한 보드카보다는 차라리 한국의 폭탄주가 부담이 적을 것 같아 그에게 폭탄주를 제안했다.

“한국에서 만들어 먹는 술인데 가까운 사람끼리 하는 것입니다. 국가 정상끼리는 해본 일이 없는데 만들어보겠습니다. 오늘 폭탄주를 만들어 함께 마시면 지구상에서 이 술을 함께한 정상은 우리 둘뿐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둘이 계산을 따지는 그런 사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어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들었다. 술을 섞기 위해 탁자에 탁탁 술잔을 두드리니 나자르바예프는 매우 신기한 듯 쳐다봤다. 내가 만든 폭탄주를 함께 나누어 마신 후 나자르바예프가 자신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잔을 마시니 나자르바예프가 이제 그만 마시자고 했다. 나는 나자르바예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양에선 1, 3, 5, 7로 갑니다. 두 잔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한잔 더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보드카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석 잔이나 마시게 됐다. 나는 이왕 한국식으로 우의를 다지는 것,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또 다른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는 폭탄주를 서로 팔을 끼고 마십니다.”

그러자 이번엔 나자르바예프가 제안했다.

“그건 카자흐스탄식으로 합시다.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는 하나다’는 의미로 친한 친구끼리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더니 나자르바예프는 나를 힘차게 껴안고 볼을 비빈 뒤 세 번의 입맞춤을 했다.


파격으로 일관한 나자르바예프

폭탄주를 마신 뒤 나는 나자르바예프에게 말했다.

“대통령께서 발하쉬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삼성물산-한국전력 컨소시엄으로 낙찰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이 대통령께서 이 문제로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조치했습니다. 나중에 중국 측이 저를 몹시 원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발하쉬 석탄화력발전소는 수주 금액만 4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사업으로, 삼성물산-한국전력 컨소시엄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나는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나자르바예프를 만나 지원을 요청했었다.

이어 나는 나자르바예프에게 말했다.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조성 건이 있는데 우리 LG화학이 이 분야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와이브로 사업 센터를 구축하여 중앙아시아는 물론 인근 지역으로 이 기술을 전파하는 방안을 제가 삼성 측에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카자흐 석유화학단지 조성은 새로운 도시 건설로 연결되는 큰 사업입니다. 저는 한국 기업이 이 일을 맡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와이브로에 대해서는 삼성 측과 구체적으로 협의를 해보겠습니다.”

나자르바예프는 이 제안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이런 사업들은 2011년 8월 25일 내가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했을 때 결실을 맺었다. 이날 삼성물산-한국전력 컨소시엄은 발하쉬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권을 확보하는 내용의 협정을 카자흐스탄과 체결했다. 또 LG화학은 아티라우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여 이를 카자흐스탄석유화학(KPI)과 합자 형태로 운영하기로 하는 사업계약서를 체결했다. 두 사업의 규모는 총 80억 달러에 달했다.

이번에는 나자르바예프가 내게 제안했다.

“대통령의 747 계획을 입안한 30여 명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한국 최고 전문가 집단이라 알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학자와 관계자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해 747 계획 입안자들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도록 하고 싶습니다.”

“언제라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최고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하여 파견하시면 747 계획 관계자들과 합동 팀을 만들어 좋은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양국의 이 같은 협력에 힘입어 한국의 카자흐스탄 투자액은 30억 1,000만 달러를 기록해, 카자흐스탄은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우리의 최대 투자 대상국이 됐다.

첫 방문에 이처럼 이색적인 환대를 받으며 나자르바예프와 가까워진 것은 과거 인연과 무관치 않았다. 내가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3년, 나자르바예프는 방한을 앞두고 “이명박 서울시장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우리 정부로부터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일정 중 잠시 공백을 틈타 서울시를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별도로 취해왔다. 나는 바쁜 일정 중 일부러 서울시를 찾는 정상이니 명예시민증을 드리며 환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급히 명예시민증을 준비해 만났는데, 뜻밖에 서로 대화가 통해 20분으로 예정되었던 접견은 1시간 이상 이어졌다.

접견을 마치고 헤어질 때 나자르바예프는 나를 포옹하면서 “다음엔 당신”이라 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환대에 대한 덕담이려니 하고 웃어넘겼다.

나자르바예프를 수차례 만나 대화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북한에 대한 견해였다.

“공산국가가 어떻게 하면 망하는가에 대해 나는 구소련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께서 지금과 같이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해나가면 언젠가 통일은 올 것입니다.”

내가 아는 나자르바예프는 북한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정보를 갖고 있었다. 어떤 루트를 통해 그 많은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북한을 비롯한 각국 정보를 매우 정확하고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를 분석하는 눈 또한 지혜롭고 심도 깊었다.

나자르바예프는 헌법을 개정해 1대 대통령이 종신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정부는 독재 정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카자흐스탄의 자국경제를 견실하게 지켜냈고 국가 미래에 대한 대비도 충실히 해왔다.

특히 자원 수출을 통해 얻은 이익을 기금으로 축적하여 국부를 늘려나가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깊은 관심을 갖는 정책으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2012년 9월 나는 카자흐스탄을 다시 방문했다. 나자르바예프는 이날 내게 색다른 제안을 했다. 퇴임 후 유럽 갈 일이 있을 때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러달라고 당부했다. 유럽에 가려면 카자흐스탄 영공을 지나야 하는데 임기 중 같이 가고 싶었지만 바빠서 못 갔던 곳을 함께 가자고 했다.

그는 내가 바쁘고 힘든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면 함께 가고 싶은 휴양지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곳이 과연 어떤 곳일지 그리고 언제쯤 이 약속이 이루어질지 기대하고 있다.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