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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 도입 양해각서이명박 | 2017.06.23 | N0.96
천연가스 도입 양해각서

이날 정상회담을 통해 한·러 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무엇보다 뜻깊은 일은 이날 한·러 천연가스 도입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는 것이다.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이 2017년부터 25년간 연 750만 톤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도입하는 내용의 양해각서였다.

당시 한국가스공사는 현대 시절 북방 자원 개발의 경험이 있던 주강수 사장이 맡아 풍부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이 사업을 추진했다.

북한을 설득하는 일은 러시아 측이 맡기로 했다. 2011년 8월 러·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메드베데프에게 철도·가스관·송전관 연결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2011년 말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전환되고, 러시아 역시 리더십 교체가 일어나 2012년 5월 푸틴이 제6대 러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철도, 가스관, 송전관 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2012년 9월 8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러시아는 가스관을 포함한 철도, 송전관 사업들에 대한 남·북·러 삼각 협력을 적극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재확인했다.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사업의 성공 여부는 북한 변수와 가격조건에 달려 있었다. 북한 정세의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북한 당국이 호응을 할수록 지불해야 할 경제적 비용도 절감될 수 있다. 

또한 당시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생산되면서 국제 에너지시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셰일가스란 진흙이 퇴적되어 형성된 셰일층에서 나오는 가스를 말한다. 그동안 채굴 기술의 부족으로 경제성이 떨어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기술 발달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 미국이 셰일가스 상업화에 성공하면서, 가스 가격은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다.

미국이 셰일가스를 FTA를 체결한 국가들에게 수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우리는 2017년부터 셰일가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주요기관의 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셰일가스를 도입할 경우 액화비용과 수송비를 합해도 기존 아시아 시장 가격보다 25~30퍼센트 저렴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가스공사는 가즈프롬과 수차례 협상을 갖고 상당 부분 세부조건에 대한 의견 일치를 봤지만 단가에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셰일가스를 고려할 때 러시아 측이 제시한 단가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철도, 가스관, 송전관 연결 사업은 단가만 합의된다면 언제든 바로 착수할 수 있다. 나는 한반도에서 러시아 극동 지역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연결되는 에너지, 교통, 물류 수송의 연결망이 언젠가는 실현되리라 믿는다. 이는 우리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한편, 동아시아 지역의 번영과 평화를 촉진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통일 한반도는 러시아에 도움”

러시아 공식 방문 마지막 날인 2008년 9월 30일,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러시아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문과 문화, 교육의 중심이었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의 많은 주요 대학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과 학술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이 대학 니콜라이 크로파체프(Nikolai Kropachev) 총장은 “러시아 학자들이 한국 새 정부의 대외정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번 학기에 이명박 정부의 신사회경제정책, 남북통일정책에 대한 강의가 개설됐다”고 소개했다.

러시아와 독일은 일 년에 한 차례 양국 정상이 참여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화’를 이 대학에서 갖고 있었다. 나는 다가오는 양국수교 20년을 맞아,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러 대화(Korea-Russia Dialogue)’를 개설하자고 제안했다.

2010년 11월 10일, 서울 G20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메드베데프는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이날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러 양국 간의 경제 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21개의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또한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합의하고, 양국 간 교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비자 간소화에 합의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청와대 만찬에서 나는 메드베데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2008년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졸업한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고려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아 동문이 됐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는 내가 후배이고, 고려대에서는 내가 선배가 됐습니다.”

이날 만찬에 앞서 메드베데프가 내 모교인 고려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일을 말한 것이다. 장내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같은 날 오후 롯데호텔에서는 제1차 한·러 대화 폐막식이 있었다. 한·러 대화는 양국 간의 민간 대화 채널이자 공공외교 채널로 한국과 러시아 간 민·관·산·학 협의체로 출범했다. 각 분과별로 논의된 결과는 양국 정상과 각 부처에 보고되어 국가정책에 반영되고 양국 간 협력을 전면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나는 폐막식에 메드베데프와 함께 참석했다. 2박 3일의 국빈 방문 기간 동안 메드베데프는 서울 G20 정상회의로 바쁜 상황에서도 자신을 환대해준 것에 대해 매우 고마워했다. 양국 간 교류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바꾸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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