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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외교? 무엇을 얻었나이명박 | 2017.06.16 | N0.93
조용한 외교? 무엇을 얻었나

이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외교부는 ‘조용한 외교’라는 기치 아래 일본에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는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해왔다. 이른바 ‘실효적 지배론’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같은 입장을 고수하는 동안 일본은 지속적으로 외무성 홈페이지와 국정 교과서 해설서 등을 활용하여 독도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해왔다. 처음에는 독도에 대한 한·일 간 분쟁이 있다고 서술하도록 지침을 만들더니, 이제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현상유지정책을 넘어 독도에 대한 주장을 강화해왔던 것이다.

나는 독도에 관한 조용한 외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여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행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 역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설사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한다 해도 우리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우리 영토가 분명한데 왜 우리가 제소에 응해야 할까?’ 내가 제소를 반대하는 이유였다.

나는 이번 독도 방문을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이 아닌 환경부 장관과 이문열, 김주영 같은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대통령이 외국도 아니고 우리 영토를 방문하는데 외교나 국방부 관계자와 동행할 필요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10일, 우리 일행을 태운 헬기가 독도에 도착했다. 헬기에서 내리자 독도 경비대원들이 힘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로 나를 맞았다. 나는 독도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헬기장 난간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 땅을 밟은 것이다. 만감이 교차했다.

곧이어 상황실로 이동해 브리핑을 들었다.

“독도는 진정한 우리의 영토입니다.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국토의 제일 동단인 독도를 잘 지켜주기 바랍니다.”

나는 경비대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그러고는 상황실을 나와 독도를 둘러봤다. 내가 ‘한국령(韓國領)’이라 적힌 바위를 어루만지자 수행원들이 기념 촬영을 요청해왔다.

“우리 땅인데 새삼스럽게 기념 촬영은…….”

순직비로 가서 헌화하고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일왕이 전한 메시지

예상대로 일본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가장 먼저 일본 언론들이 나의 독도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정부도 주한 일본 대사를 소환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천지가 개벽해도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독도를 다녀오고 나흘 뒤인 8월 14일,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충북청원의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교원 워크숍 현장에 들렀다. 한 교사가 “일왕의 한국 방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누차 입장을 밝혀왔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는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이를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를 입은 유럽인들은 독일을 용서하고 새로운 유럽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내가 일본 국왕의 한국 방문을 거론한 것은 그 같은 의미였다. 일왕은 과거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바 있다. 

일왕이 한국을 방문해 현충원과 독립기념관에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우리 국민이 일본을 용서하는 것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푸는 근원적 처방이라 생각했다.

이 같은 생각은 2009년 9월 일본 〈교도통신共同通信〉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다. “일왕 초청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일왕이 한국을 어떤 모습으로 방문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양국 간 거리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방문이 되어야 한다”고 답변을 했다.

거리감을 해소하는 방안이란 ‘과거사에 대한 일왕의 사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충북 청원에서 열린 교원 워크숍에서도 나는 교사의 질문에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데, 만일 방문한다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일본 언론들은 이 발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일왕에게 사과를 요구했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로 인해 일본 내에서 큰 반발이 일었다. 우리 언론들조차도 독도 방문과 이 일로 한·일 관계가 파국을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 국왕은 파문이 있은 지 한 달 뒤인 2012년 9월, 일본의 한 여성 주간지에서 “언젠가 우리(일왕과 왕비)가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잡지는 일본 국왕이 “나는 양국의 우호를 위해서라면 현지(한국)에서 사죄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2012년 12월, 일왕은 벳쇼 코로(別所浩郞) 대사를 통해 “한·일 상호 우호관계가 깊어지고 증진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일왕이 외교 채널을 통해 자신의 말을 다른 국가의 정상에게 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나는 일왕의 메시지를 “일왕 사과 발언과 관련하여 오해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된 데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내임기 5년 동안 일본 총리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함께 일본 정치의 불안정성은 극우 포퓰리즘이 더욱 확산되는 토양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일본의 불안과 우려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한·일 과거사는 물론 중국 등 아시아와의 과거사에 대한 망언이 줄을 이었다.

그간 양국 정치인들이 한·일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이번 일도 민주당이 3년여 집권하고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와 독도 문제를 여론정치에 이용한 측면이 크다. 아베 총리가 등장한 후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결과였다.

지금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 앞에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편승한 일본의 우경화는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의 세 번째 경제 교역국이며 긴밀한 우방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거사와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대응하더라도 경제·문화·안보 분야는 가장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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