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㉒ 거짓말로 쓰인 이팔성 회고록강훈 | 2023.01.13 | N0.24
2018년 2월 17일,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팔성은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위해 수속을 밟던 중 자신이 출국금지 된 사실을 알았다. 2007년 대선 당시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백준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을 포착한 검찰이 이팔성을 출국금지 시킨 것이다.

검찰은 그보다 며칠 전 이팔성의 혐의를 포착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압수수색은 하지 않고 출국금지만 시켰다. 압수수색은 이팔성이 출국금지 사실을 안지 닷새가 지난 21일에야 진행됐다. 덕분에 이팔성은 증거인멸을 위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주거지 압수수색 중, 이팔성은 수사관들이 보는 앞에서 서재에 놓은 메모지 한 장을 급히 입에 넣어 삼키려고 했다. 증거인멸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이팔성이 서재에 메모지를 놓아놓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를 삼키려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이 손가락을 물려 상처가 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다급한 와중에서도 검찰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를 남겼다.


▲ 이팔성 증거인멸 장면 및 이팔성이 삼키려 했던 메모지.

지난 글에서 살펴봤지만 청계재단 사무국장 이병모의 경우, 검찰이 이미 사본을 확보한 자료를 파쇄 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돼 체포·구속됐다.

이병모에 비하면 이팔성의 행위는 증거인멸 뿐만 아니라 공무집행 방해, 상해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어 훨씬 더 중대한 사안이었다. 거기다 검찰은 그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까지 확보해놨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팔성을 체포하지 않았다.

이팔성이 삼키려고 한 명함 크기의 메모지에는 MB의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와 SD(이상득 전 의원의 영문이니셜)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그 옆에 날짜와 금액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내용이 적힌 메모지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여러 장 발견됐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증거인멸의 시간이 5일이나 있었음에도 중요한 메모지 여러 장을 여기저기 흩어놨다가, 검찰 압수수색 때 그 중 하나를 삼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다. 거기에 검찰은 그 모습을 사진까지 찍었다.

검찰조사에서 이팔성은 이 메모지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그만 둔 2013년 6월 이후 작성한 것이며, 그동안 자신이 써 온 일기 형태의 비망록과 일정이 적혀있는 탁상용 달력 사본 등을 근거해 이상주와 이상득 전 의원에게 준 돈을 정리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즉 이 메모지는 이상주와 이상득에게 금품을 건넨 시기에 작성한 것이 아니라, 3~6년 뒤 과거에 작성한 비망록과 달력 사본 등을 보고 베낀 것이란 의미다.

실제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이팔성 주거지 ‘압수목록교부서’를 보면 노트·메모장 15권으로 된 비망록 이외에도, 수첩과 다이어리 그리고 일정이 적혀있는 달력 사본 등이 압수됐음을 알 수 있다.


▲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이팔성 압수목록교부서.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이팔성 비망록에는 메모지에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적혀 있는 기간의 내용만 빠져있다는 것이다. 메모지에는 이팔성이 2007년과 2010년, 2011년에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이팔성 비망록은 2008년 1월 1일부터 2008년 5월 13일까지의 내용만 있었다.

또한 검찰의 압수목록교부서에는 이팔성이 메모를 작성할 때 참조했다는 ‘달력사본’이 압수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이 역시 검찰은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이팔성이 이상주와 이상득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증거는 금품을 건네고 몇 년 뒤에 작성했다는 메모지뿐이었다. 메모지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검찰이 확보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더 황당했다. 이팔성을 압수수색한지 열흘 뒤인 2018년 2월 28일부터 언론은 이팔성이 MB 측에 22억원을 건넸고, 그 내용은 검찰이 압수수색과정에서 확보한 이팔성 비망록과 메모에 적혀있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방송3사와 종편은 연일 ‘이팔성 비망록’을 언급하며 MB 뇌물수수의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명백한 가짜뉴스였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팔성이 뇌물을 건넸다는 시기의 비망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로 인해 MB는 재판도 받기 전에 여론재판으로 유죄를 확정 받은 셈이다.

이외에도 당시 집중적으로 보도된 내용 중 하나는 2008년 3월 28일 이팔성이 비망록에 기록한 것이다. 이팔성은 MB를 원망하며 30억원을 지원했다고 썼다. 옷값도 얼마냐며 원망의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 비망록 내용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두 허위임이 드러났다.

일단 30억원을 지원했다는 내용은 이팔성 본인 스스로도 “분한 마음에 막연하게 쓴 잘못된 내용”이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다만 메모지의 내용대로 자신이 모은 돈 20여억 원을 MB 측에 지원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 이팔성은 자신의 비망록에 MB를 원망하며 30억원을 지원했다고 썼다. 그러나 이 내용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두 허위임이 드러났다. 이팔성의 검찰 진술 내용 중 일부.

그러나 이 역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2008년 2월 13일자 비망록에는 “MB에게 ‘성동’ 件(건) 이야기 함”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에 대해 검사가 서울 성동구 지역구에 대한 공천을 MB에게 요구했던 것이 아니냐고 묻자, 이팔성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상주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동’은 서울시 성동구 지역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동조선’이라는 조선업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검사가 다시 이팔성을 불러 묻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메모지에 적힌 돈이 자기 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로 실토를 했다.


▲ "MB측에 20여억원을 지원했다"는 이팔성의 진술은 검찰 조사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성동조선' 관련 이팔성의 검찰 진술 중 일부.

즉 백번 양보해서 메모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이팔성은 자기의 돈이 아닌 성동조선의 돈을 이상주와 이상득에게 전달하고, 비망록에는 금액도 부풀려 마치 자신의 돈을 준 것처럼 거짓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수사 과정에서 “MB에게 성동 건을 이야기했다”는 비망록 내용도 거짓임이 밝혀졌다.

검사가 이 내용을 가리키며 MB에게 성동과 관련해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묻자, 이팔성은 “성동조선 쪽에서 RG(선수금 환급보증)를 늘려달라고 요구해서 자신이 MB에게 이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진술을 했다.

그런데 성동조선 전 부회장인 김OO의 진술은 이팔성과 달랐다. 김OO는 검찰조사에서 “당시 성동조선에서는 RG 부분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상황”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즉 MB에게 성동 건을 이야기했다는 이팔성의 비망록 내용도 거짓이었던 것이다.


▲ 성동조선 RG(선수금 환급보증) 관련 이팔성과 성동조선 전 부회장의 진술.

덧붙여 김OO는 검찰조사에서 “성동조선이 이팔성에게 건넨 20억원은 이팔성이 요구한 돈이며, MB가 아닌 이팔성에게 준 자금”이라는 사실을 진술했다. 이팔성이 20억원을 요구하기에, MB측근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이팔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생각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OO는 “MB에게 성동조선과 관련해 청탁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이팔성에게 성동조선의 돈을 줬던 것은 (이팔성에 대한) 보험조였다”고 했다.


▲ 김모 전 성동조선 부회장의 검찰 진술 내용 중 일부.

이처럼 이팔성 비망록의 내용들은 온통 거짓으로 점철돼 있었다. 메모지에 적힌 금액 역시 증거로 인정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메모지 내용대로라면 이팔성은 성동조선으로부터 20억원이나 되는 돈을 받아 MB의 사위와 형인 이상주와 이상득에게 전달했다. 만일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MB정부 시절 성동조선에게 특혜가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였다.

성동조선은 MB정부 말기 사세가 크게 기울었고, 회사 운영자금을 마련하고자 매출실적을 부풀려 허위로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 받았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2012년 12월 성동조선의 창업자인 정홍준 대표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2012년 성동조선 창업자가 사기 대출로 구속됐다는 언론 보도.

만일 성동조선이 메모지 내용대로 이팔성을 통해 20억원의 뇌물을 MB측에 건넸다면, MB정부 말기, 창업자가 구속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메모지에 적힌 내용은, 성동조선의 돈을 받은 이팔성이 회장이 구속된 성동조선 측이 따질 것을 우려해 “사적으로 돈을 사용하지 않고 MB측에 정치자금으로 건넸다”고 변명을 하기 위해 만든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메모지 작성 시기가 2013년 이후라는 사실도 그 같은 내용을 뒷받침한다.

변호인단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이팔성은 성동조선으로부터 받은 돈의 일부를 2007년 대선자금으로 이상주와 이상득에게 건넨 정황은 있으나, 20억원 전부를 건넸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로 보인다.

그러나 가짜뉴스를 통해 여론이 조작되자 검찰의 이팔성 뇌물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연일 이팔성 비망록이 방송에서 보도되는 상황에서 검찰에 출두한 관련자들은 이팔성 비망록의 내용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고, 10여 년 전의 없는 기억을 쥐어짜 추측까지 보태어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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