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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룸지노프 전 칼믹공화국 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23일 대치동 사무실에서 키르산 일룸지노프 (Kirsan Ilyumzhinov) 전 칼믹 공화국 (러시아 연방국가) 대통령을 만나 양국 경제협력을 비롯해 기후변화, 국제사회의 아젠다가 된 녹색성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세계 체스연맹 회장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키르산 일룸지노프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 사무실을 자주 찾는 것은 30년 전 맺은 인연 때문이다. 기업인 시절 이 전대통령이 구소련을 방문했을 때 당시 젊은 사업가였던 키르산을 처음 만났다.그는 공산체제 하에서도 시장경제에 관심이 많았고, 짧은 시간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으로부터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했다. 이후 현대자동차 판매 등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소련 해체 후 러시아 연방 칼믹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푸틴 대통령, 메드베대프 총리와도 각별한 사이인 그는 이 전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최근 세계 동향에 대해 기업가로서 의견을 전해주곤 했다. 칼믹공화국은 영토는 남한보다 약간 작고 인구는 4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면양과 소를 키우는 유목민이지만, 55억톤의 석유매장량을 갖춘 산유국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한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개발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2017-11-23

일룸지노프 전 칼믹공화국 대통령 접견

李 前대통령, “쌍용차, 노...

마힌드라그룹 임원진 접견이명박 전 대통령은 1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라지브 두베이(Rajeev Dubey) 마힌드라 그룹 사장과 딜립 순다람(Dilip Sundaram) 마힌드라 코리아 사장을 접견했습니다. 마힌드라 그룹은 자동차 생산을 중심으로 한 인도의 기업집단으로 지난 2011년 국내기업인 쌍용차를 인수했는데요. 쌍용차는 지난해 337억 원(추정치)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이후 9년 만에 흑자전환을 했습니다.이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쌍용차가 어려웠지만 노사가 협력해서 극복을 잘 해서 기쁘게 생각한다”며 “쌍용차의 노사관계는 국내 다른 기업에도 모범이 되고 있다”고 치하했습니다. 또한 “어려운 여건에서도 마힌드라 본사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잘 지원해 줬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쌍용차의 흑자전환에는 신차 ‘티볼리’의 흥행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7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 등 노사 상생협력이 경영실적 개선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는 업계의 평가가 있습니다.두베이 마힌드라그룹 사장은 “우리가 한국에서 창조한 노사모델을 인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비즈니스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이날 접견에는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함께 했습니다.

2017-02-15

李 前대통령, “쌍용차, 노사협력의 모범 사례로...”

[전문] 李 前대통령 모두진...

23일 법정에 출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두진술에서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 조사와 진술을 거부하고 기소 후에는 재판도 거부하자는 주장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국민 앞에 맹세한 사람”이라며 “대한민국은 삼권분립, 법치주의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것을 믿고 검찰이 기소한 문제에 대해 재판부와 대한민국 국민에게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이어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부동의하지 않고 모두 동의한 이유를 비롯해, 다스 소유 의혹, 삼성 소송비 대납 의혹 등 검찰이 기소한 사안에 대해 담담하게 설명했다. 다음은 이 전 대통령 모두진술 전문이다.<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진술>나는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 조사와 진술을 거부하고,기소 후에는 재판도 거부하자는 주장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국민 앞에 맹세한 사람입니다.대한민국은 삼권분립, 법치주의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저는 그것을 믿고 검찰이 기소한 문제에 대해재판부와 대한민국 국민에게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재판에 임하면서 수사기록을 검토한 변호인들은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많으니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부동의하고증인들을 재판에 출석시켜 진의를 다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증인 대부분은 전대미문의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저와 함께 밤낮없이 일했던 사람들입니다.어떠한 이유로 상당부분 사실과 다르게 말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나름대로 사유가 있을 것입니다.그들을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것은 혹여 본인이나 가족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더욱이 국정을 함께 이끌어온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리는 것은저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참담한 일입니다.고심 끝에 증거를 다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변호인은 재판에 불리할 수 있다고 만류했지만,나의 억울함을 객관적인 자료와 법리로 풀어달라고 설득했습니다.재판부가 나의 이러한 결정과는 무관하게검찰의 무리한 증거들의 신빙성을 검토해 줄 것이라고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제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스 소유’ 건입니다.1985년 제 형님과 처남이 회사를 만들어현대자동차 부품국산화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저로서는 친척이 관계 회사를 차린다는 비난이 염려되었지만,정세영 회장이 부품국산화 차원에서 자격있는 사람이 하는 것인데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형님이 하는 것이니까 괜찮다고 하면서정주영 회장도 양해한 일이라고 하여 시작되었습니다.그 후 30여 년간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소유나 경영을 둘러싼 그 어떤 다툼도 가족들 사이에 없었던 회사를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의문을 갖습니다.공소 사실에 관해 변호인이 변론에서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므로저는 말을 줄이겠습니다.동시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저 역시 전쟁의 아픔 속에서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어릴 때 일용노동자로 일하던 시절 제 소원은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습니다.그 후 종업원 90여 명의 중소기업에 들어가전 세계를 누비며 일했고대한민국과 함께 성장했습니다.학교에 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행상을 하던 시절,어머니는 저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지금은 어렵지만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이 다음에 네가 잘되면 너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그 때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대답했지만,수십, 수백 번 반복되면서 그 말은 제 마음 깊숙이 박혔고,행상하시며 고생하던 어머님이 세상 떠나시던 날 저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서울 시장 시절 월급 전액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경제 사정으로 고등학교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을 위해‘하이서울장학금’을 만든 것도그러한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2007년 출마 선언하면서 저는저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장학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하였고지금은 그렇게 실행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매일 새벽 무릎 꿇고 기도하시던 어머니와의 약속을실천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어머니는 배움이 많은 분은 아니었지만자식들에게 ‘바른 정신’을 물려주는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어머님 정신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정치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품은 일이 있습니다.권력이 기업에 돈을 요구하고,이에 응하지 않으면 세무조사로 보복하는 등의 일이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경련을 찾아가 대기업 회장들을 만나,“이제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는 없어졌다. 선거에 여러분 부담없이 치뤘으니 정부와 기업 간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기업은 국내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데만 최선을 다해 달라.”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마음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취임 후에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경제인들과 회의는 수없이 했어도개별기업 사안을 가지고 단독으로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청와대 출입기록만 제대로 확인해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야당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을 복원할 때 대기업 건설회사가 참여했고,4대강 살리기 사업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했습니다.퇴임 후 몇 차례나 감사원 감사와 오랫동안 검찰수사가 이루어졌지만,불법적인 자금이 밝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내 자신,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실무선에서의 가능성도 극도로 경계하였기 때문입니다.제2롯데월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본인이 청계재단을 설립할 때도 외부 참여를 모두 거절하고순수하게 저의 재산만으로 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그런 저에게 사면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은충격이고, 모욕입니다.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세 번째 도전하기로 결정된 후 최우선적으로 이건희 IOC 위원 자격유지를 위한 사면을 강력히 요구받고,정치적 위험이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삼성 회장이 아닌, 이건희 IOC 위원 사면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2010년 2월 IOC 벤쿠버 총회를 앞두고급히 2009년 12월 단독 사면하여 IOC에 통보하고자격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이러한 노력으로 평창올림픽이 유치되고 지난 2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대한민국은 전후 짧은 기간에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나라로세계인의 찬사를 받아왔습니다.그러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는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간 끝없는 분열과 갈등이 있어 왔습니다.이제는 우리가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의 시대를 열어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더욱이 우리 앞에 언젠가는 남북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남북 간에 진정한 화해, 협력, 나아가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는 것은우리 모두의 시대적 요구이자, 소명이기도 합니다.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우리 사회가 먼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화합하는 것이 전제가 될 것입니다.바라건대, 이번 재판의 절차와 결과가 대한민국 사법의 공정성을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 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그리고 공정한 판결이 내려지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랍니다.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해 재임 중 경험을 전수하거나 봉사와 헌신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법정에 피고인으로 서 있습니다.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합니다.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습니다.구체적 사실에 관한 것은제가 아는 바를 변호인에게 모두 말했고,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필요한 사항을 주장할 것입니다.존경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2018-05-24

[전문] 李 前대통령 모두진술
중국영토에 착륙한 우리 군용기

중국영토에 착륙한 ...

18일 중국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 침범해 우리 공군 전투기들이 긴급 대응하는 일이 벌어졌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어 일명 ‘중국의 B-52 전략폭격기’로 불리는 H-6K 전략폭격기를 비롯해 중국의 최신예 전투기와 정찰기 5대가 KIDIZ를 동서로 횡단했다. KIDIZ는 국제법상 영공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상대측에 사전 통보하고 비행하는 것이 국제관례다. 또한 대통령 국빈방중 이틀 만에 통보 없이 중국 군용기가 우리 KIDIZ를 침범한 것에 대해 언론은 가벼이 볼 수 없는 사안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중양국 군용기가 상대국 영토에 들어서는 일은 정부 간 합의가 있다 해도 국민정서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군용기가 중국 영토에 착륙한 일이 있었다.2008년 이명박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을 보름 앞둔 5월 12일 스촨성에 리히터 규모 8.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7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고, 37만 4천명이 부상을 당한 엄청난 재해였다. 우리정부는 피해 복구에 중국이 여념 없는 상황에서 불편을 줄까 염려되어 방문을 늦추는 방안도 고려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정부는 계획대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이명박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 아직 여진의 위험이 남아있는 쓰촨성 위로 방문 계획을 검토했다. 당초 공식일정에는 잡혀있지 않았지만 후진타오 주석과의 만찬자리에서 “쓰촨성에 어려운 일이 있으니 돌아갈 때 그 현장을 방문해 위로를 드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후진타오 주석은 처음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만류했지만, 이 대통령의 진심어린 설득에 그 자리에서 외무장관을 불러 이 대통령의 지진 현장 방문을 진행시켰다. 당시 우리 군은 텐트와 모포 등 3억8000만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쓰촨성으로 공수해 전달하기로 했고, 우리 기업들이 민간 차원에서 지원한 규모도 약 2400만달러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군용 수송기가 처음으로 중국 영토에 착륙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일본 역시 자위대 군용기를 통한 구호물품 공수를 원했으나 중국은 이를 거부했다.이 대통령은 5월 30일 오후 쓰촨성 청두공항 도착해 공항에서 우리 군 수송팀 관계자들을 격려한 뒤 지진 피해 지역인 두장옌 이재민 촌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 격려 했다. 이러한 이 대통령의 진심어린 위로 행보로 중국 언론들은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이웃’의 진심을 느꼈다고 보도했다. 이에 후진타오 주석은 베이징 올림픽이 폐막하자마자 한국을 답방, 8월 25일 청와대에서 이 전 대통령과 만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구체안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전 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 직후 확대정상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취임 이후) 6개월 만에 세번째로 만나서 그런지 아주 가까운 친구로서의 관계를 느낀다"며 "어제가 한중 수교 16주년 기념일이었는데 거기 맞춰 후 주석이 방한해 줘 더욱 뜻깊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후진타오 주석 역시 베이징 올림픽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보내 준 지지, 그리고 쓰촨성 지진 피해 때 진지하게 지원해 준데 대해 사의를 표하며, "어제가 한중수교 16주년이었는데, 양측의 노력으로 양국관계가 각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양국은 고위급 왕래를 유지해 왔고 계속 인적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해 오며 정책적 신뢰를 쌓아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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